▲ 최충식 논설실장 |
그러나 이 이론은 결정적으로 과학이 뒤집었다. 메뚜기를 가둔 공간에 입을 접착제로 붙인 거미를 넣었다. 메뚜기는 천적에 대한 공포로 화학조절 변화가 왔다. 죽은 메뚜기를 땅에 묻으니 질소 함량이 낮아 미생물 성장과 영양 순환이 느려졌다. 스트레스를 받은 메뚜기는 흙에 덜 이로웠다. 포식자 앞의 먹이동물 스트레스는 이렇게 무섭다. 일부 업계의 갑질 횡포에 당한 쪽의 두려움이 이만큼은 아니라도 부정적인 생리 반응은 유사할 수 있다.
▲ 일러스트=김보혜 |
인지의 수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도 있다. 남해 죽방염 어로법으로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잡은 멸치는 그물로 잡은 멸치와 달리 비늘이 상하지 않는다. 자기가 잡혔는지를 몰라 스트레스가 없다. 사람 유형에도 고요 속에서 일이 잘 풀리는 거북이형이 있고 그물 안의 멸치처럼 자극을 좀 받아야 '필' 받는 경주마형이 있다. 팽팽한 벼락치기로 원고를 마감한 기자가 뒤에 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신경전달 물질 도파민이 분비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스트레스가 과도하면 포식자 앞의 미꾸라지나 메뚜기 꼴이 된다. 피하려면 쌓이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줄어든다. 스트레스의 본질이 이렇다. 얼마 전 서울과 대전에서 열린 멍때리기 대회는 좀 억지스럽지만 이렇게라도 머리를 비워줘야 한다. 멍때릴 때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 하여 뇌가 활성화된다. 멍때림은 피곤한 뇌의 초기화인 것이다.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기제의 공통점 때문에 실연의 아픔이 두통약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처방은 각자 나름이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고기압)으로 가라'는 동네 정육점 문짝의 캠페인처럼 삼겹살 몇 점이 약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고를 당해 흉터 걱정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유방 성형외과를 찾아 30바늘쯤 정교한 '바느질'을 받으면서 나의 연령망각증을 통렬히 후회하고 반성했다. 치명적인 부상의 주원인은 위험한 자신감과 만용이다. 그것이 스트레스 원인이 됐고 다시 또 극복했다.
스트레스의 정의('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내적·외적 자극')가 나온 지는 내년이 겨우 80년이다. 이상을 감지해 스트레스를 받는 인간 뇌는 1만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나 질퍽한 스트레스의 진창길을 걷는다. 6·25 참전국 에티오피아에서는 물이 귀해 비오는 날에 빨랫감을 꺼내 비를 맞힌다. 국민소득으로는 최빈국인 이 나라가 행복지수 1등 국가로 선정된 일은 불가사의하다. 그 나라 사람들이 특이점은 스트레스에 젖지 않는 습관에 길들여 있다는 것이다.
도시바 메모리 매각과 관련해 요즘 이름이 오르내리는 궈타이밍(郭台銘) 대만 폭스콘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100만 마리의 동물 관리는 내게 두통거리다.” 그 100만 마리가 된 사람들의 두통은 어떨까. 메기론의 경영학 또는 비경영학적 약점 하나는 스트레스 미화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물론 삶의 전장에서 신속 정확하게 창을 겨누게 하는 원동력이다. 업무 생산성도 높인다.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를 뒤집으면 디저트(→desserts)가 된다. 먹이동물에게, 아니 포식자에게도 감당할 만한 스트레스는 디저트다. 아예 '메인' 같을 때도 있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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