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할미와 할아비. 어렸을 때 무던히도 듣고 자랐다. 손자, 손녀 앞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이른다. 물론 표준어다. 안면도에 가도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있다. 요즘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서 오연서의 입을 통해 할마마마라는 궁중용어를 듣는다. 그 대칭어는 할바마마다. 고어가 된 할마, 할바는 시대를 더 올라가면 한아마(한어마), 한아비와 만난다. 제주도의 할망, 하르방은 변천사의 한 흔적이다.
다른 기고문도 있어서 '할배' 사용 실태를 조사하려다 보니 우연찮게 '우리' 기사가 걸려 반가움에 한 번 더 읽어본다. 중도일보 전국판 중 영남권에서 막 뜨는 할매할배의 날 기사였다. 이날의 시작은 할마, 할빠가 신조어에 오른 시점과 거의 맞물린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공약에서 비롯됐는데 광역ㆍ기초지자체 가리지 않고 국가기념일 제정을 목표로 뛰고 있다. 전국화에 할매, 할배가 걸림돌일까 디딤돌일까. 이것도 궁금 사항이다.
나중에 이렁저렁 큰 무리 없이 허용으로 가닥이 잡힌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예능물 '꽃보다 할배'가 탄생한다. 나영석 PD 재주가 원체 좋지만 타이틀이 '꽃보다 할아버지'였으면 드라마 맛이 반감되고 '꽃보다 경단'이나 '꽃보다 남자'와 운율이 어긋나며 시청률이 가라앉았을지 모른다. 지난 장미대선 때는 할매할배 유세단이 있었다. 어느 사이, 할배가 아재에는 못 미치지만 친근해지고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비하의 어감을 싹둑 다 잘라버리진 못했다. 노인이 보육세대와 생산세대 사이에 낀 부양세대라는 섬처럼 인식되는 사회는 더 그렇다. 노인은 배척되고 있다. 65세 이상 연령층 셋 중 한 분은 홀로 산다. 상대적 빈곤율 49.6%가 나타내듯 노인은 또 가난하다. 77.9%는 노후 경제활동을 희망한다. 섬이 되기 싫다. 그러고 보니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가 섬,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도 거대한 섬,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또한 섬이다. 노인이 외톨이 섬으로 남겨진 공동체 역시 인류가 바라는 이상향일 수는 없다.
고립의 이유가 나머지 세대의 인지적 공감 결여만은 아니지만 바라보는 시선과는 밀접하게 연관된다. 용어도 그럴 수 있다. 예컨대 서울시와 산하 구청의 어르신복지과는 일반화된 노인복지과, 복지노인정책과, 노인장애인복지과, 노인장애인과보다 존중감이 든다. 어색함도 주지만 젊은층 신조어로 '있어빌리티'(있어 보이는 능력)한 방식이다. 그 영향인지 충남도의회에서도 노인을 어르신으로 바꿔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었다.
여기서 핵심은 부서명과 공문서 표현보다 담겨 있는 진심이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라는 사물존칭, 백화점 존칭을 하며 “할배 온다”고 어법을 파괴하는 세태지만, 손주가 그 부모와 다달이 할매와 할배를 찾는 관계 맺기에서 공동체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면 확산시켜도 좋겠다. 수도권은 더 그렇고 충청과 호남에서 할매할배의 날은 정서상 좀 생소하다. 한데 낯설게 시작하지 않은 미래가 언제 있었나. 어르신과 할배의 조합은 결국 용어가 아닌 인식의 문제, 정책의 문제로 남는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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