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
과거에는 국중 대회 때마다 음주가무를 즐겼다. 옛 문헌을 보면 ‘飮酒歌舞晝夜無休(국중 대회 때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말이 항상 나온다. 심지어는 ‘男女群取相醉歌戱 (남녀가 떼 지어 모여 취해서 놀며 즐긴다)’는 말도 있다. <고금주>에 나오는 ‘백수광부(흰 머리의 미치광이 노인)’도 허리에 호리병을 차고 술에 취해 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온 노래가 “임이여 강을 건너지 마오. 임이여 강을 건너시네, 임이여 물에 빠져 죽으시네. 나는 장차 어쩌란 말이요”라는 곡이다. 오랜 문헌에는 술 이야기가 문학적으로 의미를 더해 주지만 현실에서의 음주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주도를 잠깐 논해 보기로 한다. 술을 마실 때는 1,3,5,7,9의 원칙이 있다. “술은 석 잔을 원칙으로 하되 다섯 잔은 허용되며 일곱 잔은 넘을 수 없다”는 이른바 홀수로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다음에 마실 여분을 남기기 위해 홀수로 마신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홀수는 양을 상징하고 짝수는 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는 홀수가 겹치는 날이면 항상 행사가 있음을 기억하면 된다. 1월 1일(설날), 3월 3일(삼짇날), 5월 5일(단오) 등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술은 홀수 잔으로 마셔야 한다. 석 잔이 가장 품위 있는 술이라 품배(品杯)라고 한다. 넉 잔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기 때문에 효배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주도는 석 잔만 마시고 일어나는 것이다.(참고로 여기에서 잔의 크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음으로 술을 마실 때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이 있다. 혼자 떠들고 남이 이야기하면 화를 내기도 한다. <명심보감>에 ‘醉中不言 眞君子(술에 취해도 말을 하지 않음은 참다운 군자다)’라고 하였다. 좌중을 압도하고 혼자 잘난 척하는 것도 좋겠지만 가능하면 분위기에 맞게 언어활동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어활동 속에는 어디까지 술친구로 삼아야 할까 하는 문제도 있다. 소학에 의하면 十年長則肩輩而後之(나이가 열 살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되 약간 뒤에 선다)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객지 벗은 10년이라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술을 마시다가 보면 “당신이 뭔데, 나이가 몇 살이야. 민증(주민등록증) 까볼까”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상황까지 가려면 차라리 마시지 않는 편이 훨씬 좋다. 사전에 의하면 ‘당신’이라는 말은 이인칭 극존칭이기도 하다. 그러나 싸움 끝에 나오는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의 취사선택도 상당히 중요한 주도의 한 가지라 하겠다. 요즘 특히나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건배사다. ‘오바마(오늘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를 비롯해서, ‘당신 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져주면서 살자)’ 등등의 건배사가 유행이다. 누구나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어야 술좌석에서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건배사는 분위기를 흐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건배(乾杯)는 잔을 말리자(잔을 비우자)’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 번 건배하면 석 잔을 넘으니 그만 마셔야 한다. 모든 것은 적당하게 해야 맛깔스럽다.
술은 자칫 범죄를 유도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음주운전은 살인예비행위임을 명심하자. 청주 크림빵 뺑소니 사건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주도를 모르고 자제할 수 없으면 안 마시는 것이 상책이다.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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