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희 우송대학교 사회복지·아동학부 교수 |
과거의 ‘가족’은 한 명의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기능이 ‘가족’에 집중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근대화와 함께 이러한 ‘가족’의 기능은 분리돼 국가 혹은 전문 조직에 흡수됐다. 현대 가족에 남은 것은 기초적이고 아마추어적인 수준의 기능뿐이며, 그나마 사회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조차 극히 드물게 됐다. 그럼에도, 가족은 인간의 삶을 시작하는 곳이자 인생 대부분을 의존하게 되는 공동체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삭막한 세상에서는 가족이 인간관계의 최후의 보루와도 같다. 그렇다고 꼭 가족이 절대적으로 아군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어떤 가족은 지옥 같은 삶의 공동체가 되어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건강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모두가 편안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세상에서 경쟁하고 성취하면서 치열하게 살다가 문득 쉬고 싶을 때 돌아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얼마 전 ‘두 노모’의 병상을 지켜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한다. 관습적인 가족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한 개인의 원천이자 미래 한 생명의 움터가 될 가족의 의미를 통해 4차 혁명이라는 융합의 시대에 세대 간의 융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복지 정책의 방향성을 재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표정은 전혀 없지만, 외관은 화려한 모습의 할머니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병상에서 과거의 찬란했던 자신의 과거만을 되풀이했다. 옆 침대의 할머니는 중증임에도 늘 미소가 넘쳤다.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남편이 늘 곁에 있었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거의 매일 출근하는 아들. 며느리로 북적거렸다. 함께이지만, 혼자인 할머니와 진정 함께인 할머니의 가족의 의미는 어떻게 다를까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근대화 사회는 성취가 삶의 방향성이었다. 근대화된 가족 역시 이런 근대화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면서 ‘정서적 결합’이라는 가족의 진짜 얼굴을 잃어버리고 가족 안에서도 사회생활을 하며 가족에게 지쳐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부끄럽지 않은 네가 되어라. 나의 불만족을 네가 감당해라’라는 가족 간의 압력이 아니라 서로에게 쏟는 따뜻한 지지와 위로가 가족의 진짜 얼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복지는 그동안 파괴된 가정을 복구하고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근대적인 이데올로기 안에서 부서져 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 가족의 진짜 얼굴을 찾기 위한 예방적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할 때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가족의 기초가 된다면 적어도 가족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돼 살아갈 힘이 주어지리라 확신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행복한 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지향하는 덴마크의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공감능력 때문이라는 보고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공감 능력 키우기(empathy-building)수업을 정규수업으로 배정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일. 개개인이 심리적으로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는 가족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 그 끈끈함 때문에 소소한 대화가 건강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주춧돌을 다지는 일에 온 힘이 집중되어야 할 때이다. 이 나라의 리더에게 힘차게 외쳐져야 하는 말! 그것은 바로 가족을 세우는 정책이어야 할 것이다.
김명희 우송대학교 사회복지·아동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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