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아 갈마도서관 사서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얼마 전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와 벌인 대국에서 패한 이후, 여러 SF영화가 그리듯 인간이 AI에 의해 파국을 맞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모습이 우리에게 더욱 현실성 있게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지 않더라도 적어도 미래 세계는 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글로벌 산업체계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 책 ‘오래된 미래’는 오히려 오래된 것에서 미래의 모습을 찾는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게 될 때엔 ‘오래된’과 ‘미래’의 모순된 조합이 의구심을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마지막엔 강한 긍정과 확신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느낄 때 돌아온 길을 되짚는다. 되짚다보면 잘못 들어선 지점이 보이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때가 있다. ‘오래된 미래’가 던져주는 화두는 그것이다. 이 책은 199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07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이후 개정판이 나오고도 6쇄를 거듭할 만큼 널리 읽혀 온 스테디셀러이다.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 모든 지역은 서구식 개발로 글로벌 경제 체제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요새처럼 숨겨져 전통을 간직해오던 평화롭고 자족적인 라다크에도 서구 문명이 침입하면서 이 지역의 아름다운 모습과 전통적 가치들이 급속히 파괴되어 갔다. 이 과정을 몸소 지켜본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라다크와 전 세계에 서구적 개발의 함정을 알리고 그들이 갖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되찾아주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오고 있다.
지금 우리 세대가 숙명처럼 안고 사는 수많은 문제들이 글로벌 경제화가 불러온 것이라고 하면 그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전 세계를 혈관처럼 이어주는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체제! 각국 정부와 대기업들은 손을 맞잡고, 전 세계 곳곳을 에너지와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여 통합경제체제 안으로 모은 후, 무한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부는 전 세계의 혈류를 타고 빨려가며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되었다. 당장 편리함을 가져다줄 것 같았던 기술들은 인간을 종속시키고 소외시켜오고 있다. 에너지와 자본 집약적인 성장 추구로 환경오염은 걷잡을 수없이 가속화 되었다. 자연의 섭리와 생물학적 다양성을 도외시하며 농업생산 체계를 수송에 용이한 작물로 획일화시키고 상품성을 위해 살충제를 과다 사용하며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획일적이고 상업적인 문화에 밀려 지역의 문화와 전통은 파괴되고 있다. 거대한 상업 문화는 엘리트 지상주의, 문화 우월주의를 낳았고, 이 모든 것이 맞물려 현대인은 깊은 소외감, 불안, 우울, 자존감 상실에 시달리고 있다. 기술과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노인, 성장위주의 사회에서 설 곳을 잃은 청년,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을 배울 수 없는 획일화된 교육시스템, 경제적으로 사상적으로 소외된 집단들이 벌이는 테러리즘, IS와 근본주의자들, 거대한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익명성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범죄들, 저자는 이 모든 문제들을 야기한 주된 원인이 글로벌 경제 중심 체제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라다크의 변화를 몸소 지켜보며 성찰해낸 이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서구 문명으로 변질되기 이전의 라다크에서 찾았다. 역사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아주 오래 전에나 있었을 법한 사회, 라다크! 적게 가졌지만 풍요롭고, 세대를 거듭해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안분지족의 지혜를 가진 그들은 인간과 동물, 자연, 신령스런 모든 것과 소통했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라다크인이 지닌 지혜는 대가족들로 이루어진 지역사회공동체의 체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다. 유대가 깊은 작은 공동체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책임의식을 기를 수 있었다. 아이든 여성이든 노인이든 구성원 누구도 소외됨이 없었다. 편리한 기술에 의존하는 문명인들 보다 훨씬 자유롭고 강했다.
‘글로벌’보다 ‘로컬’, ‘위로부터’보다 ‘아래로부터’, ‘중앙집중화’보다 ‘탈중심화’, ‘획일성’보다는 ‘다양성’ 추구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미래의 대안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노력들은 결실을 맺어 지금은 세계적으로 무분별한 개발이 주는 위험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고 있고 자발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는 생태공동체,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없애고 농민과 소비자가 상생하도록 하는 근거리 농산물 소비 체계 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것인지 다시 묻고 싶다. 이 글로벌 경제 체제와 그와 맞물린 기술 개발이 속도를 멈추지 않고 내달린다면 아마 SF영화나 소설들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다가올 것이고, 속도를 늦추고 오래전 잃어버렸던 아름다운 가치와 기본 정신으로 선회한다면 지속가능한 미래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을까? 이런 미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어떠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까? 박수영 기자 sy870123@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