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
오천 년 역사이래 우리네 삶과 함께하는 것이 무속신앙이다. 어찌 보면 종교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의 생활 습성으로 뿌리를 내린 것 같다. 무당의 역할을 돌아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일이 아닐까. 지역마다(조선팔도) 무당이 하고 있는 차림새는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길에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숱한 상처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조상은 귀신이 들었다며 무당을 불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내 몸에 다른 귀신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내가 한 명 더 내 몸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병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존재하는 다른 나를 인정하고 함께 지낸다면 무당을 부를 필요가 없을 거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아픈 사람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나온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무속신앙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사건이라는 생각과 선무당이 사람 잡네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무당의 역할이라는 것이 화해하지 못한 내 안의 나를 화해시키고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 몸에 있는 그를 쫓아낸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운 일일까. 이런 일이 종종 뉴스를 장식하다 보니 무속신앙을 오해하고 폄훼하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지역마다 무당을 잇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진도의 무당 교육에서 선무당이라는 오해를 떨쳐버리는 방안을 찾아본다. 얼마 전 진도 무당에 관해 홍성담 화백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장식과 색채를 모두 흰색으로 죽이고 무당의 몸짓과 소리만으로 극도의 형식적 완성을 추구하는 진도의 무당 이야기를 듣고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아닐까. 시(詩)·서(書)·화(畵)는 물론이고 춤과 음악까지 갖춘 예술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 사람들의 말을 빌려 이야기한다면 종합 예술인이다.
진도에서는 어른 무당이 새끼 무당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킨다고 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무당이 선무당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받아들이고 그 아픔을 때로는 시로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춤으로 치유한다. 요즘으로 보면 정신과 의사 역할을 무당이 하지 않았을까.
가끔 무당 이야기를 할 때 크게 두 가지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하나는 누군가의 몸에 귀신이 들었는데 그 귀신을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과, 무당은 예지(豫知)를 갖춰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앞에서 또 다른 나를 인정하는 과정을 무당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밀어두고 사람들의 호기심과 약한 심리를 파고드는 ‘용하다’를 돌아보면 이런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앞날을 알아보고 싶고 우환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러다 보니 여러 이유로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무당을 찾아 나서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선무당 역시 늘어날 거다.
무당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든다. 마음에 병이 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이 가진 재능(시·서·화·춤·노래)을 발휘해 아픈 영혼을 위로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신을 숭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거야말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 아닐까. 문화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출발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슬픔이나 고통에서 풀어주는 사람들이 문화 예술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진정한 무당은 예술인이 맞는 것 같다. 더불어 무속신앙을 우리의 전통문화로 바라보는 마음도 이제 가져보면 어떨까.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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