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외모부터가 도깨비는 우리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부여군 규암면 와리에서 발견된 백제 귀형문전처럼 눈을 부라리고 손가락 3개를 펼쳐든 험상궂은 인상은 더욱 아니었다. 뿔 달리고 호피무늬 옷에 철퇴를 든 것은 일본 도깨비 오니(鬼)의 영향이다. 남자와 친구 맺고 여자에게 성적으로 집착하고 접근하는 전래 도깨비 모습은 공유, 아니 사람을 더 닮았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순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순 없었어?” 하고 사이다 발언을 하는 섹시한 삼신할머니 역시 전혀 생각지 않던 매력으로 다가온다.
뭐니 뭐니 해도 최대 인기 요인은 드라마가 주는 ‘재미’에 있다. 이것은 설화와 신화를 재창조한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의 힘이다. 감칠맛 나는 대사, 주·조연급 안 가리는 연기력, 도깨비가 시공간 없이 출몰한 안국역 돌담길, 고창 메밀밭, 강원도 주문진의 촬영지들, 공유(도깨비)와 이동욱(저승사자) 브로맨스라는 애정 같고 우정 같은 진한 유대, 음원 차트를 싹쓸이한 도깨비 삽입음악(OST)의 감미로움. 이런 인기에 힘입어 공유 사이트 불법 시청이긴 해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 조치인 한한령(限韓令)까지 살짝 녹였다. 소설로도 이목을 끌고 케이블TV 재방송에 돌입해 콘텐츠 영향력은 당분간 이어질 태세다.
여기에 사회적인 양념을 가미해 거짓이 진실의 눈을 가려 판타지에 몰입하게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조금 예를 들면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은 멈추고 국민은 각자도생이다. 불황과 고물가에 떠밀려 장발장처럼 먹을거리를 훔치다 전과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복지부동으로 모자라 낙지처럼 땅에 찰싹 들러붙은 낙지부동 공직사회도 있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권, 자기 정치에 빠진 대선 주자들은 허깨비 같은 지지율만 보이고 민생은 안중에 없다. 담론과 시대정신은 어디에 쓰느냐는 식이다. 있다면 포장용일 것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니체 식으로 들여다보면 ‘권력에의 의지’들이 벌이는 각축장일 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마저 알듯 말듯 대통령 코스프레 행보를 계속한다. 본래 재상의 재(宰)는 요리를 주관하는 셰프, 상(相)은 그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이었다. 주방장이며 웨이터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했다. 한서에는 즉치민즉시치효(則治民卽是治肴)라 했다. “정치한다는 것은 곧 백성의 음식물을 챙기는 것.” 국정을 요리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데 아주 딴판으로 다르다. 음식을 제멋대로 요리하고 독식해버렸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 82%, 남성 25% 정도가 드라마의 영향을 받는다. 만약 도깨비를 빌려 국가·사회 시스템을 개조하려는 욕구가 움직였거나, 물리법칙을 건너뛰어 모든 살과 액과 손을 정의로운 도깨비장난에 맡기고 싶었거나, 불멸의 삶을 끝내려면 인간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처럼 우리 또한 도깨비가 필요했거나, 그 무엇이건 문명과 야만의 이중성을 띤 피로사회에서 도깨비에 위안을 받고 있는 우리가 안쓰럽다. 도깨비를 허깨비라고도 했던 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른 식빵처럼 팍팍한 현실이지만 이제는 판타지에서 귀환해야 할 때다. 신비로운 낭만 설화를 뒤로 하고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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