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금명간(今明間)도 그렇다. '오늘내일 사이'지만 치밀하고 계산된 시간은 아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를 금명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날이 13일이다. 이날 '금명'이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엄격히 지킨다면 영장이 금일(13일)이나 명일(14일) 청구돼야 맞지만 하루이틀 늦은들 약속 불이행으로 비난받을 일은 없다.
그게 금명간이다. 이와 닮은 '조만간(早晩間)'은 '이르든지 늦든지 간에'다. 영어의 수너 오어 레이터(sooner or later)나 비포 롱(before long) 따위가 시간 탄력성 면에서 못 따라온다. 동화 '모모' 속처럼 시간도둑들이 집집의 시계 바늘을 앞당길 이유도 없다. 어제, 그저께, 그끄저께만 보면 과거 회귀적일지 모르지만 모레, 글피, 그글피까지 콕 찍어 쓰는 나라는 지구상에 드물다. 군색하게 그제를 어제의 전날(the day before yesterday)로 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이 경우 시간관은 미래지향적이다.
대략 9년 전이라 기억에서 가물거리는 일이다. 부차적인 설명은 빼고, 대전시의회 의장불신임안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을 때다. 비주류 측이 “의장이 본회의장에서 금명간 거취를 결정해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었다. 좀 웃기는 건 사퇴 시점을 '금명간'에서 '조만간'으로 바꿔 시간을 벌었다고 자평한 사실이다. 신문기사를 애써 뒤져보니 사퇴까지 5개월 걸렸다. 조만간이 다섯 달이다. 다소간 여유 차이가 있으나 금명간과 조만간의 쓰임새는 그게 그거다. 이래저래 블랙코미디 같다.
주한미군이 붙여줬다는 '코리안 타임'이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현대적으로 돌려보면 시간관념 부재가 아닌 융통성 부여다. 인도네시아의 잠 까렛(고무시간)의 느긋함과는 또 다르다. 지금이야 1분만 늦어도 칼 같이 따지는 일본 수준이지만 코리안 타임은 글로벌 미덕이 되기도 한다. 로비에서 환담하다가 15분쯤 지난 언저리에 입장하는 것은 국제회의 관례이며 매너다. 정시 도착해 혼자 우두커니 앉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진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나온다.
별안간 이런 생각도 해본다. 한국인의 성공 DNA에 '빨리빨리'의 속도 경영뿐 아니라 '이르든지 늦든지'의 여유로움이 혼재돼 있다. 도미니카 같은 국가에서 경제성장 비결로 빨리빨리 문화를 배우려고 안달이지만 힘닿으면 수일간, 일간, 다년간, 당분간, 경각간, 돌차간(몹시 짧은 동안), 얼마간, 잠시간에 조만간과 금명간의 문화까지 배우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확정하지 않고도 은연중 말미를 주는 금명간과 조만간은 '언제 밥한 번 먹자'라는 '관용어'처럼 편하다.
이번 금명간은 비교적 빠르다. 특검의 금명간은 딱 사흘(3일)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 공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16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 귀국인사를 한 날짜도 같은 날이다. 금명간과 비슷한 반 전 총장의 “기회 봐서 한번”은 3일 걸렸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조만간'을 조사했더니 3일 이내(19.8%), 1주일 이내(33.5%), 한 달 이내(27.0%)였지만 3개월 이내(10.4%)나 1년 이상(9.4%)도 꽤 된다.
구속영장 청구로부터 또 금명간의 시간이 흐른 18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됐다. 연간 매출액 300조원 넘는 기업의 오너리스크도, 대한민국 국정 공백과 이 지긋지긋한 비문화적 상황도 금명간 끝내면 좋겠다. 우수리 싹 떼고 되도록 '한 달 이내'의 조만간, 금명간에.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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