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도덕성이 사라진 시대 -나눔으로 다시 세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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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도덕성이 사라진 시대 -나눔으로 다시 세우는 삶

  • 승인 2016-12-29 11:14
  • 신문게재 2016-12-30 23면
  • 김명희 우송대 교수김명희 우송대 교수
▲ 김명희 우송대 교수
▲ 김명희 우송대 교수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사는 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있을까?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권력과 무력이 두려워서 조심스러웠던 외적 요인들이 있었다면, 작금은 나의 사는 모습이 과연 옳은가를 끊임없이 묻는 내적인 조심스러움이 크다.

흔히 요즘을 도덕성이 사라진 시대라고 한다. 도덕성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책을 뒤적여 보았다. '도(道)'란 이치와 근원, 즉 마땅한 것을 의미한다. '덕(德)'은 마음을 닦아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도(道)'가 내면적 이성이라면 '덕(德)'은 내면적 이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실천적 행동이다. 그렇게 본다면 도덕성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한 것들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의문이 든다. 인간으로서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우리는 왜 도덕성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내 생각의 끝은 '먹고 사는 것'에 달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생존 대신 이치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20여 년 전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쉼터에 찾아 온 20대 여성이 있었다. 세상만사 다 귀찮은 표정으로 한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던 그녀. 누구와도 말하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거나 멍하게 한 곳 만을 바라보던 그녀가 생각났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열등감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폭력. 견디지 못 한 형제들의 가출. 병든 어머니. 남은 도덕성 한 조각을 붙잡고 있던 그녀가 견디지 못하고 쉼터로 피신해 왔었다.

어리고 지친 그녀가 쉼터에 있는 동안 복지사들은 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았다.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재주가 많았다. 글과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고 음식도 맛깔나게 잘 했다. 자신과 어머니의 생존 문제에 매몰되어 있던 삶에서 벗어나 쉼터 식구들과 그 재능을 맘껏 나누며 사랑을 받았다. 조금씩 자존감을 찾아가던 그녀는 직업 훈련을 받고 쉼터를 떠나 다시 집안의 가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얼마 전 그녀를 다시 만나고 마음이 무너졌다. 그녀는 여전히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병든 부모님을 수발하며, 조카를 돌보며 혼자 가혹한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식수로 쓸 물이 없어 수돗물을 끓여 뜨거운 물이 식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도 시원한 생수 한 통을 사가지고 방문해주었을 때, 매월 필요한 여성용품이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해 할 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지인에게 민망스러운 시선을 받는 것 보다 당장의 현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고 했다. 나눔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빈곤에 놓여 있을 때 어떤 형태의 도움이라도 받게 되면 그것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삶에 희망이 된다고 했다. 지친 듯한 목소리의 그녀가 하는 말들이 내 마음을 더욱 후벼 파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복지관이 봉사활동으로 무척 분주해진다. 연탄 봉사, 김장 봉사, 독거 노인들을 위한 내복 전달, 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 등, 크고 작은 봉사들로 전에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지관을 다녀간다. 때로 다녀가는 그 사람들 때문에 복지 활동의 주체인 나도, 복지 수혜자도 상처 받지 않을까, 이런 일시적인 나눔 요식이 진정한 봉사일까라는 생각에 속상할 때도 많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아닌 줄 알면서도 최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 눈물 흘릴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울면 안 된다고 강요하지 말자. 왜 그렇게 밖에 못 사느냐고 탓하지 말자. 그 대신 우리 모두 이 겨울 누군가의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광장에 흔들리는 작은 촛불처럼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과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연말연시를 기대해 본다.

김명희 우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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