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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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 승인 2016-12-08 11:56
  • 신문게재 2016-12-09 23면
  •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독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준 단어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 였습니다. 그 단어는 마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표현만큼이나 우리 속에서 몇 개 되지 않는 인용문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아 그렇지”라고 깨우치게 되는 화두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만큼'우리는 얼마나 살아야, 얼마나 배워야 '아는 것'이 보일까요.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평생 학습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면서 평생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진정 내 눈에 보이는 순간은 손꼽힐 정도이고,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빨리 정보습득을 강요당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보다 빠른 정보, 보다 질 높은 정보의 제공이라는 세련된 무장 앞에서 정보의 소비자이기도한 우리는 오히려 왜소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정보의 질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거대 정보산업체의 뒤편에 서있는 것 같아 위축감마저 듭니다. '이제 그만 하산 하거라' 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한국인에게는 전설처럼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참 기막힌 표현입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에게 “이제 그만 하산 하거라” 하면 그 제자는 “아닙니다 스승님 옆에서 더 배우렵니다” “아니다. 이제 내가 가르쳐줄 것은 다 가르쳐주었다” 라며 스승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제자는 울면서 산을 내려옵니다.

여기서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이 가르침의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마당 청소하고 나무 주어 오고 장작 패고 그러길 몇 년 하다가 어느 날 스승은 제자를 방으로 불러들여 가르치기 시작하고는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스승은 하산하라고 말한 후 사라집니다.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와 그만 가르쳐도 되겠다는 때를 정확히 판별하는 스승이야말로 도사님입니다.

이쯤 와서 더 궁금해지는 것은 스승이 가르쳤을 내용입니다. 그 스승 역시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을 것입니다만 가르침의 핵심은 제자가 앞으로 살아갈 때 처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틔어 주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리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으나 이제 그 정도이면 혼자서도 터득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될 때 가르침은 더 이상 그만인 것이지요.

배워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는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그런데 더 이상 무엇을 배우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라고 말할 도사님을 못 만난 탓이라고나 할까요. [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 헬렌 켈러 같은 아이에게 선생은 단어를 익히게 합니다. water 라는 단어 등 몇 개의 단어를 익히게 합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은 공포의 '블랙' 상태에서 아이는 저항합니다. 선생이 반복해주는 워터라는 발음을 아이는 손바닥을 통해 발음이 나오는 입모양와 입김, 그리고 실제 물의 느낌과 반복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물 이외에 몇 개의 단어를 반복하지만 아이는 심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분수대에 빠지면서 물의 개념을 깨치게 되고 기뻐합니다. 그 순간 다른 개념들도 동시에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왜 선생이 그토록 반복해서 입에 대고 발음하고 느끼게 했던지. 그 때 아이는 왜 공부해야하는지 깨닫고 일취월장하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공부와 학습이라는 단어로부터 하산을 작정한 저에게 다가온 단어는 문화적 감수성입니다.'문화적 감수성'을 제대로 내 속에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내가 배웠던 모든 학습된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갈 때만이 진정한 문화적 감수성이 생길 수 있겠다, 라고 언젠가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 대해 한 분이 답장을 주었습니다. 학습(學習)이란 단어의 습(習)은 어린 새가 스스로 반복하여 날기를 배우는 것이라면서 감수성의 영역도 제대로 학습했다면 진정한 문화적 감수성을 쌓아가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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