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
'아는 것만큼'우리는 얼마나 살아야, 얼마나 배워야 '아는 것'이 보일까요.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은 평생 학습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면서 평생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진정 내 눈에 보이는 순간은 손꼽힐 정도이고,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빨리 정보습득을 강요당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보다 빠른 정보, 보다 질 높은 정보의 제공이라는 세련된 무장 앞에서 정보의 소비자이기도한 우리는 오히려 왜소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정보의 질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거대 정보산업체의 뒤편에 서있는 것 같아 위축감마저 듭니다. '이제 그만 하산 하거라' 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한국인에게는 전설처럼 살아있는 표현입니다. 참 기막힌 표현입니다. 어느 날 스승이 제자에게 “이제 그만 하산 하거라” 하면 그 제자는 “아닙니다 스승님 옆에서 더 배우렵니다” “아니다. 이제 내가 가르쳐줄 것은 다 가르쳐주었다” 라며 스승은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제자는 울면서 산을 내려옵니다.
여기서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이 가르침의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마당 청소하고 나무 주어 오고 장작 패고 그러길 몇 년 하다가 어느 날 스승은 제자를 방으로 불러들여 가르치기 시작하고는 때가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스승은 하산하라고 말한 후 사라집니다.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와 그만 가르쳐도 되겠다는 때를 정확히 판별하는 스승이야말로 도사님입니다.
이쯤 와서 더 궁금해지는 것은 스승이 가르쳤을 내용입니다. 그 스승 역시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을 것입니다만 가르침의 핵심은 제자가 앞으로 살아갈 때 처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틔어 주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리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으나 이제 그 정도이면 혼자서도 터득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될 때 가르침은 더 이상 그만인 것이지요.
배워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는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그런데 더 이상 무엇을 배우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라고 말할 도사님을 못 만난 탓이라고나 할까요. [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 헬렌 켈러 같은 아이에게 선생은 단어를 익히게 합니다. water 라는 단어 등 몇 개의 단어를 익히게 합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은 공포의 '블랙' 상태에서 아이는 저항합니다. 선생이 반복해주는 워터라는 발음을 아이는 손바닥을 통해 발음이 나오는 입모양와 입김, 그리고 실제 물의 느낌과 반복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물 이외에 몇 개의 단어를 반복하지만 아이는 심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분수대에 빠지면서 물의 개념을 깨치게 되고 기뻐합니다. 그 순간 다른 개념들도 동시에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왜 선생이 그토록 반복해서 입에 대고 발음하고 느끼게 했던지. 그 때 아이는 왜 공부해야하는지 깨닫고 일취월장하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공부와 학습이라는 단어로부터 하산을 작정한 저에게 다가온 단어는 문화적 감수성입니다.'문화적 감수성'을 제대로 내 속에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내가 배웠던 모든 학습된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갈 때만이 진정한 문화적 감수성이 생길 수 있겠다, 라고 언젠가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 대해 한 분이 답장을 주었습니다. 학습(學習)이란 단어의 습(習)은 어린 새가 스스로 반복하여 날기를 배우는 것이라면서 감수성의 영역도 제대로 학습했다면 진정한 문화적 감수성을 쌓아가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춘아 대전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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