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희 우송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건우에게 큰 사고가 난 후 억장이 무너졌지만 희망은 있었다고 했다. 치료만 잘 받을 수 있다면 건우가 예전처럼 재잘재잘 말하고 아빠를 앞서서 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료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중증 장애 아동을 치료할 병원이 없어서 멈추어 설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단다. 이렇게 병원이 많은데, 의사가 많은데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 병원도 의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치료할 병원이 없어 전국 병원에 대기를 걸어놓고 30분 진료를 위해 아이와 가족이 전국을 떠도는 삶. 그는 스스로를 '재활난민'이라고 말했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 삶을 뒤덮고, 일상이 무너졌다. 고단함 보다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희망? 가질 수 없다면 만들어 볼까? 건우 아빠는 7년 동안 만났던 중증 장애 아동의 가족들과 힘을 모으기로 마음먹고 '토닥토닥'이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토닥토닥'은 어린이 재활 병원 설립을 목적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고, 대전의 여러 단체들도 참여하여 힘을 모았다. 병원 건립 기금 모금을 위한 '기적의 새싹' 캠페인이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학교를 중심으로 그리고 많은 단체를 통해 시작되었다. 현재 국회에서도 지방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건우법)이 발의된 상태이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건우 아빠는 큰 눈망울에 희망을 담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건우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모두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국 장애 아동 수 7만 5000명 중 중증 장애 아동은 4만 3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그 비중이 높다. 대전에도 2000여 명에 가까운 중증 장애 아동이 있다. 이들에게 재활치료는 받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전국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고작 30개 정도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문제로 정부나 지자체에서 쉽게 엄두를 못 내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일본에 202개, 독일에 140여 개의 아동재활병원이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공공병원은 올해 4월 모금을 통해 개원한 서울에 있는 '푸르메 어린이 재활 병원'이 유일하다. 결국 국가가 아닌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복지다. 우리나라 예산의 30% 이상은 사회복지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고, 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한 복지 공약을 앞 다투어 내세우고 대중에게도 낯설지 않은 내용이 되었다. 복지국가로의 발전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도 핵심적인 사회 발전의 의제(agenda)로 들어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복지가 닿지 못하는 부분은 너무도 많다. 헌법 34조에 명시된 사회복지는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복지의 실현을 위해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모든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하나하나 손을 내밀어 어루만지는 것이 마땅하나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대답을 사람에게서 찾아본다.
사람들이 여기를 보라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소리를 내고 움직여야 한다. '토닥토닥'을 알게 되어서, 건우 아빠를 만나게 되어서 나는 복지를 보는 또 하나의 눈을 떴다. 결국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복지라면 세상의 소리를 더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 소리를 이 지면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좋은 복지 정책을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람 사는 멋진 세상을 꿈꾸면서.
김명희 우송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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