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시간의 길, 공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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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시간의 길, 공간의 길

  • 승인 2016-11-17 11:28
  • 신문게재 2016-11-18 23면
  •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스마트한 시대 풍경이 가져온 것이 있다면 아이들 손이나 어른들 손에 휴대전화가 들려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나면 공간을 가리지 않고 휴대전화로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분명 소통을 위한 행동인데 소통이라고 말하려니까 부자연스럽다. 본인은 열심히 소통을 하는데 상대방이 그 모습을 볼 때 접근하기 힘든 벽처럼 느껴진다. 역설적이지만 언제 어디서든지 소통이 가능해져 오히려 소통의 빈곤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스텔라' 라는 영화를 놓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영화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 말에 공감을 하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영화에서 시간을 지우고 다시 보라고 했다.

처음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럴 만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간 속에 살아서 공간의 개념이 나오면 낯설 수밖에 없다. 영화는 시간의 벽을 깨고 공간을 건너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을 찾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시간에 묶여 허우적거리다 생을 마감하는 일을 반복해 왔는데 시간의 길에서 공간의 길로 이동하려면 얼마나 많은 관념의 벽을 깨야 할지 안다면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조금만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 역시 시간의 개념보다는 공간의 개념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들쳐보면 시간보다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은 시간을 기억하려고 기념일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끝은 자신보다 늙어버린 딸의 죽음을 보며 젊은 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공간을 찾아 떠난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서 살다보니 힘이 드는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우주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인간 스스로 시간이라는 관념의 틀을 만들어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지 자꾸 묻게 된다.

스마트한 시대를 열었지만 그것은 시간을 조금 앞당겨 썼을 뿐이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 인간이 만든 시간의 길을 따라왔지만 과연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일까. 나만 생각하는 욕심만 늘었다고 말하려니까 마음이 아프다.

몇 주 전, 필자가 근무하는 갤러리 밖이 시끌벅적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나가보았더니 70대 할머니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남녀가 기억을 더듬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퍼즐조각처럼 하나하나 맞추고 있었다. 한 참을 듣고 있다 무슨 일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40년 전에 이곳에 살았는데 집이 없어지고 빈터만 남았다고 아쉬워했다.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곳에는 부엌이 있었고 이곳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이곳은 마당이었다고 말한다. 40년 만에 어릴 적 동기간들과 함께 했던 집을 보고 싶어 이렇게 인천에서 엄마를 모시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네 명의 중년들은 아들과 딸들이었다.

어릴 적 함께 했던 공간들이 아직까지 마음속에 고스란히 살고 있었다. 단지 기억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서로의 기억을 찾아 집이 있었던 빈터를 보고 완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직 그들 모두를 묶을 수 있는 향나무가 그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전 추억은 시간에서 지워졌지만 공간에 대한 기억은 선명했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그 공간을 찾고 싶어지는 걸까. 연어가 생명을 품고 하천으로 회귀하는 본능처럼 말이다.

우리가 시간의 길을 버리고 공간의 길에 들어서면 지금보다는 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살 수 있는가를 넘어 어떤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가로 생각을 전환하면 스마트한 기계들이 없더라도 진정 마음이 똑똑해지지 않을까.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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