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오는 날은 제 생일이에요, 정말 좋아요!”
병원이라면 울상부터 짖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하얀 가운의 의사와 간호사의 품에 스스럼없이 폭 안긴 한 소녀가 속삭인다.
갈색 머리에 또래보다 큰 키, 뚜렷한 쌍꺼풀과 장난 가득한 미소를 가진 소녀가 8번째 생일을 맞아 을지대학교병원을 찾았다.
2009년 8월 25일을 시작으로 8년째 을지대학교병원 신생아실(신생아집중치료센터)에서 생일을 맞는 소녀의 이름은 ‘엘리나(Alina)’. 미국 아이다.
2004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인 아담스 부부는 직장을 따라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행복한 신혼을 즐기다 2009년 ‘축복’과 같은 첫 아이 ‘엘리나’를 임신했고, 하루하루를 새기며 아이의 탄생을 기다렸다.
출산 예정일보다 두 달 이른 2009년 8월, 산모에게 갑작스런 진통이 있어 급히 인근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는 “산전고혈압이 의심되며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한 상태라 당장 분만해야하는데 이곳에서는 어렵다”며 대학병원을 추천했다.
응급실을 통해 을지대학교병원을 찾은 산모는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았고 약물투여 등에도 호전이 안 되자 여러 교수의 협진으로 서둘러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30주 만에 세상으로 나온 엘리나는 스스로 숨 쉬는 것도 버거운 1.4kg의 미숙아였다. 때문에 엘리나는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와 벤틸레이터(신생아 산소호흡기) 같은 의료장비에 의지해야 했다. 신생아실에서 하루하루 고비를 넘기며 자란 엘리나는 두 달 가까운 입원치료로 마침내 건강을 찾았다.
“첫 아이라 특히 미숙했던 우리는 타국에서 생활하며 낯선 문화와 서툰 의사소통 등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이곳의 선생님들이 큰 의지가 됐습니다. 퇴원 이후에도 병원 선생님들은 갑자기 아이에게 열이 나거나 이상 증세가 있을 때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도 늘 친절하게 도움을 주셨어요.”
2010년 8월, 엘리나 부모는 딸의 첫 돌을 맞아 신생아실을 찾았다.
“저희의 축복인 엘리나를 지켜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방문했어요. 세심하게 신경써주던 병원 직원 여러분이 마치 가족 같아서 아이의 생일을 함께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엘리나 가족은 그 해를 시작으로 이듬해, 또 다음해에도 매년 엘리나의 생일날마다 병원 신생아실을 찾았다. 2012년 겨울에는 엘리나의 동생 카얀(Kyan)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렇게해서 올해로 병원 신생아실에서의 ‘엘리나 생일 파티’는 8번째다.
초등학교 1학년인 엘리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다. 특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엘리나의 꿈은 ‘미술선생님’이다.
엘리나의 부모는 “또래아이들보다 키도 크고, 언어 습득도 빠른 영특한 아이”라고 대견해 하며 “지금까지처럼 건강하게, 다양한 꿈을 꾸며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신생아 집중치료 지역센터장 김승연 교수는 “엘리나뿐만 아니라 역경의 시간을 견딘 이른둥이들이 만삭아들 못지않게 건강하게 성장하고, 여러 가지 재능에 두각을 보이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엘리나 역시 앞으로도 또래 아이들보다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라고 응원했다.
올해로 12년째 한국에서 지내는 아담스 부부는 엘리나가 성인이 되어도 신생아실을 매년 방문하며 기념하고 축하할 계획이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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