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파주 헤이리마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 될 수 있다(Everything you can imagine is real).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파주의 계절은 항상 겨울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파주 출판단지는 일정하게 인쇄되는 책들처럼 표정이 없을 것만 같았고 임진각에서 바라보는 망망대해처럼 차가울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의 불편한 선입견이랄까. 하지만 파주라는 지명 뒤에 따라오는 헤이리마을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중화시켜주었다. 헤이리. 정겨운 시골마을 같으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이 풍겨나는 듯한 이름. 1998년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을 비롯해 작업실, 미술관,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했다고 한다. 궁금했던 헤이리 마을의 이름은 경기·파주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동요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만의 작업공간이라니.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그 곳이 부러웠다. 헤이리 마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마을에 심어진 나무들의 표정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예술, 어렵지 않아요=헤이리마을에서의 촬영이나 취재는 사무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가능하다. 사무국 직원의 안내를 받다보니 막막했다. 매표소에 소개되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건물들이 마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이 아닌 거대한 도시 같았다. 하루 안에 모두 다 둘러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 마을이기에 사무국 직원이 추천해준 3곳을 위주로 둘러보았다.
헤이리 마을 정 중앙, 야외무대를 등지고 있는 노랑미술관에 도착했다. 노랑미술관은 보는 그림에서 만지고 느끼는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기만 해도 선사시대부터 고대 그리스,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인상파까지 서양미술사를 독파할 수 있다. 건물도 유치원 건물처럼 노란색이어서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며 어렵고 지루한 미술작품을 부드럽게 소화시켜준다. 2015년 12월에 문을 연 미술관은 '노랑'이라는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의 빈센트 반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속 노란색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켈란젤로가 높은 천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마지막에 자리한 영상관에서는 22m에 이르는 영상으로 모네와 르누아르, 고흐 등과 같은 화가의 명화 36점이 애니메이션과 플래시로 꾸며져 있어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을 보는 것인지 꿈 속을 거니는 것인지 신비롭기까지 하다. 전시관의 끝에는 명화에 대해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카페와 아이들과 직접 명화를 따라 그려볼 수 있는 체험관이 있다.
▲예술혼, 손끝에서 활짝=미술관에서 나오면 넓은 풀밭과 곳곳에 조형물을 즐길 수 있는 야외무대가 있다. 이곳에 '마음이 닿길'에 있는 헤이리마을의 하이라이트 '생각하는 의자'가 있다. 커다란 나무의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데 옆에 서 있는 나무와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어 한 번 앉아 보았다. 헤이리 마을의 상징적인 코스라고 하니 추억 한 장 담아가는 것도 좋겠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노랑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한향림 옹기박물관이다. 한향림 옹기박물관은 2004년 개관한 유서 깊은 곳으로 국내 유일의 도자전문 사립 뮤지엄이다. 이정호 이사장과 한향림 관장이 설립했으며 조선 후기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 사용되어진 질그릇과 푸레독, 오지그릇 등 다양한 옹기를 수집, 전시함으로써 사라져가는 우리 옹기의 쓰임새와 아름다움을 현재적 시각으로 재조명 한 곳이다. 1층은 상설전으로 옹기 소품에서 대형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지역·형태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2층은 옹기를 주제로한 다양한 특별전과 기획전이 개최되는 공간이다. 어쩌면 우리가 밟고 지나친 한줌의 흙들이 모여 불을 만나 구워지고 도예가들의 예술혼이 덧씌워져 이런 작품들이 탄생했을 과정들을 상상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시장 벽에 붙어있는 운보 김기창 선생의 말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예술가는 늙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창조주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는 어쩌면 평생을 흙을 만지고 다뤘지만 자신도 늙고 땅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가더라도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한적한 연못 옆에 있는 한스갤러리다. 화가 한상구의 손끝에서 태어난 종이 조형집 뷰티풀 하우스는 각각의 아기자기한 작품과 이야기들을 고이 접어 둔 곳이다. 유럽풍의 낯익은 건물의 카페나 작은 서점, 악기점 등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압축되어 있다. 종이에 수채화, 아크릴릭 등 다양한 채색과 함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히 칼과 가위로 꾸며내는 작업을 거친 세밀한 표현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의 창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색다른 미술품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작가의 표현력이 눈길을 끈다.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연못의 분수는 파주에도 여름이 오고 있다는 걸 알려주듯 활기차게 물을 뿜고 있었다. 헤이리. 자꾸만 되뇌어 봐도 한겨울,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동백꽃같이 발갛게 마음을 덥혀주는 이름이다.
▲가는길=승용차로 간다면 대전에서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서 자유로로 빠지면 된다. 약 3시간정도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복합터미널이나 유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양종합터미널로 간다. 200번(백석동~요진와이시티)을 타고 2200(문발동~아랫말)으로 환승해 파주영어마을 정류장에서 내려서 헤이리 마을까지 걸어간다. 총 4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먹거리=어느 지역에 가도 번호표를 뽑아 줄서서 먹는 맛집이 있기 마련이다. 가림시골밥상(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86번지)이 그렇다. 경기도가 지정한 파주 맛고을 음식문화거리에 있다. 가격은 일반 한식집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지만 18가지 반찬과 구수한 된장찌개, 싱싱한 야채를 한 상에 만나 볼 수 있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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