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연대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 1만원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바야흐로 최저임금 상승 바람이 불고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20대 국회의원 선거와 11월 미국 대선까지 나라 안팎으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하면서 표심을 의식한 이들이 최저임금 인상론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마침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 전원회의실에서 1차 전원회의를 열고 고용노동부장관이 요청한 '2017년 적용 최저임금 심의요청서'를 상정하며 최저임금 협상에 들어갔다.
최저임금(안) 심의·의결 시한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인 6월28일까지다.
▲정치 시즌 타는 최저임금=오는 13일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 모두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각각 2020년, 2019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실효성 있는 소득분배개선을 위한 보완적 정책'의 하나로 최저임금을 중산층의 하위권 소득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은 3일 “20대 국회 회기 내에 최저임금을 8000~9000원까지 올리겠다”고 말했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봐도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뜨거운 감자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7.25달러로 5년째 동결된 연방 최저시급을 12달러,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두 배가 넘는 1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영국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9파운드(1만4600원), 일본도 매년 3%씩 최저임금을 인상해 1000엔(1만600원) 수준으로 올릴 예정이다.
▲정착과 폐지 그리고 부활…정답은 없다=최저임금제는 120여 년 전인 1894년 뉴질랜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당시 해운근로자를 중심으로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중재재판소가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조정중재법'이 만들어졌다.
이어 1896년 오스트레일리아, 1909년엔 영국에서 최저임금법이 제정됐다.
영국의 사례를 자세히 보면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되짚어볼 수 있다.
영국은 19세기 이래 기본적으로 노사 교섭단체를 통해 임금을 결정했으나 노조가 없는 업종의 여성근로자 등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에 시달렸다.
임금위원회법은 이들 여성과 연소근로자를 보호하고자 임금위원회가 임금을 강제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도입 30년 만에 각 산업분야에 임금위원회가 들어섰고 전체 근로자의 15%인 300만명이 대상근로자가 됐다.
나아가 영국은 1945년 '임금심의회법'을 통해 임금위원회에 더 큰 권한과 결정범위를 부여하고 임금심의회로 개편했다.
하지만 1970년대 대규모 파업 등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대처 총리 체제 아래 임금심의회는 시장원리를 저해하는 제도로 전락했고 1993년 폐지됐다.
당시 영국 정부는 임금심의회가 설정한 최저임금액이 빈곤을 거의 완화하지 못했다거나 심의회가 기업에 지급능력 이상의 임금을 강요할 경우 기업은 고용을 줄여 대상산업의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논리를 폈다.
그것도 잠시. 대처리즘과 함께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이 시행되며 소득불균형 확대가 사회문제로 불거졌고 소득격차 완화 수단으로 전국최저임금제도 도입 요구가 다시 고개를 든다.
1997년 노동당 블레어 정부는 경영자, 노동자, 전문가 등 3자로 이뤄진 저임금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논의를 토대로 1998년 7월 전국최저임금법을 제정했다.
저임금위원회는 노동에 상응한 임금보장으로 빈곤을 줄이고 근로자의 소득불균형을 조정하며 생산성 향상과 기업경쟁력 제고 등 국민과 기업, 근로자 모두에게 전국최저임금제가 유익하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최저임금제는 임금심의회 폐지 불과 6년 만인 1999년 4월 전면 시행됐다.
이와 함께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최저임금제는 개발도상국에도 도입되는데 아시아에선 영국의 영향을 받은 스리랑카가 1927년 처음으로 시행했다.
1948년 인도, 1951년 필리핀, 1955년 대만, 1959년 일본에 차례로 최저임금제가 태동했고 우리나라는 1986년 12월 최저임금법 제정·공포로 198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다.
▲최저임금의 정치경제학=올해 최저임금 6030원은 작년 7월9일 자정을 훌쩍 넘긴 오전 1시께 의결됐다. 법정심의기한인 6월29일에서 열흘이나 지난 뒤였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측은 시급 1만원, 사용자위원 측에선 전년수준인 5580원 동결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근로자위원 전원 불참 속에 공익위원 단일안 6030원(8.1% 인상)이 표결로 통과된 것이다.
박준성 최저임금위원장은 의결 직후 “최저임금은 경영이라고 공부했는데 위원회에 와서 경제라는 걸 배웠다. 그런데 이번 협상을 하면서 정치로 진화했다는 걸 알았다. 10대 위원회는 최저임금이 경영이자 경제이자 정치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2016년 최저임금은 전년대비 8.1%(450원) 인상으로 결정됐다. 여기엔 경영학적 측면의 유사근로자 임금인상률 4.4%, 정부 정책목표인 소득분배 개선분 2.1%, 사회적 열망과 요구를 반영한 협상조정분 1.6%가 포함돼 있다”고 풀이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의결에 대해 노동계는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향상과 노동시장 격차해소를 통한 소득분배 개선에는 역부족이라고 했고 경영계는 최저임금이 경제수준에 비해 너무 높게 설정돼 영세기업·소상공인 존립이 위협받으며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양측 모두 최저임금안에 대해 이의제기서를 제출했으나 정부는 그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최저임금 6030원은 그렇게 사회적 진통과 험난한 협상과정을 거치고서야 그해 8월5일 고용노동부 장관에 의해 결정·고시됐다.
문승현 기자 hey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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