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주 한밭도서관 사서 |
▲ 변신, 프란츠 카프카, 열린책들, 2009.
|
그레고르는 외톨이였다. 곤충으로 변신된 아침에도 5년 동안 성실하게 다니던 직장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침대에서 전혀 적응이 되지 않은 곤충의 몸둥이와 제각각 움직이는 수많은 다리로도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게 출근 준비를 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어이없는 상황에 소리라도 지르고, 정신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리고 출근 시간이 늦도록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 그레고르를 방문 밖에서만 “출근 안 하니” 하고 소리 지르는 가족들의 무심함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몸이 아픈 건지? 아니면 정말 늦잠을 자는 건지? 확인하려고 방문을 열고 아들을 확인해야 하는데, 가족들은 문 안의 상황보다는 문 밖에 찾아온 업무대리인에게만 관심이 있다. 그럼에도 그레고르는 곤충으로 변신한 몸을 세워 방문을 열고 찍찍거리는 소리로 당황한 가족과 업무대리인에게 오늘 지각 이유를 설명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곤충으로 변신되어 문 밖을 못나오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동안에도 그레고르를 찾아오는 직장 동료도 친한 친구도 이 책을 덮을 때까지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다는 것은 그레고르를 더욱 힘들고 고통스럽게 외톨이로 만들었을 것 같다. 오직 가족을 위한 희생만 강요된 삶에서 그레고르는 무엇을 꿈꾸고 갈망했을까?
그레고르는 가족을 사랑했다. 여동생 그레테가 음식을 넣어주러 방에 들어올 때도 오빠의 흉한 모습에 놀랄까봐 몸을 쇼파 밑으로 들어가 감추고 숨도 쉴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 4시간이나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철없고 생각이 짧은 동생은 오로지 두렵고 무서운 곤충이라고 생각했고 그 곤충을 끝까지 오빠라고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 대신 무너진 가정을 부양했다. 일개 점원으로 시작해 열심히 일하고 영업사원으로 승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활비를 5년 동안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벌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곤충으로 변한 자신을 돌보는 것을 힘들어하며,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되자 아무 원망도 분노도 없이 평화롭게 죽음을 선택한다. 자신이 부양하던 가족들에게 버림받고도 부양받는 입장이 되자 가족을 위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바보같이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한다. 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 가는 가족의 모습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그레고르네 가족 감자씨네는 대화가 필요했다. 그레고르는 영업사원으로 늘 출장을 다녀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가족에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서 불만과 스트레스만 커졌다. 만약 그레고르가 용기를 내어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았더라면 어느 날 감자씨네로 찾아온 불행과 억울함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까닭은 그레고르가 곤충으로 변신된 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서 모두들 일자리를 찾았다. 천식으로 병약한 엄마는 바느질을 시작하고 늘 쇼파에 늘어져 있던 무능한 아빠는 경비원으로 일자리를 얻고, 17살에 여동생도 판매원으로 취직을 해서 작게나마 힘을 보태어 무너진 가족에 생계를 위해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레고르가 혼자서 힘들게 짊어진 멍에를 좀 더 일찍 가족들에게 솔직하고 진심되게 알렸더라면 이 가족이 겪을 고통은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가족이라도 대화가 단절되고 소외된 외톨이 그리고 무관심과 개인주의가 인간을 흉측한 곤충으로 변신시키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덮으며 변신은 소통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첫째, 나를 봐 달라고, 내 말을 들어달라는 간절함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둘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원만하고 단절되지 않게 살아가는 생존법칙은 바로 대화라고 생각했다. 결국 따뜻한 마음을 담고서 서로를 바라봐 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면 분명 복잡하고 힘든 이 세상 속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들은 든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며 우리 가족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최현주 한밭도서관 사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