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구 변동 한국전력공사 서대전지사 앞. 황용훈(56)씨가 위와 같은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노란 바탕 피켓에는 모든 문구가 빨간색으로 한 글자씩 쓰여 있었다. 그는 지난달 21일부터 “송전탑 건설에 따른 피해를 보상해 달라”며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어찌된 사연일까. 황씨는 유성구 금고동 311-4 소유주다. 이 땅은 황씨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농지로 약 700평 규모다.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만큼 황씨 역시 벼농사로 생계를 잇고 있다.
조용하던 동네는 지난해 9월 초부터 시끄러워졌다. 장비와 자재를 가득 실은 트럭과 굴착기 등 온갖 중장비가 마을을 들락날락했다. 어리둥절하던 황씨는 인부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 어떤 공사를 하는거죠?” “밀양 송전탑 다음으로 높은 송전탑을 건설해요.”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송전탑 건설은 '세종분기 송전선로(345kV) 건설사업'의 일환이었다. 이 사업은 세종시와 충남·북 지역에 필요한 전력공급을 위해 추진됐다. 선로길이는 충북 청원군에서부터 세종시까지 13.152km. 해당 구간에는 송전탑 30기가 설치된다.
황씨 소유 토지로부터 뒤쪽과 옆쪽에 송전탑 건설이 시작됐다. 2기의 송전탑은 논에서 35m 남짓한 거리였다. 그는 높아지는 송전탑을 볼수록 걱정이 커졌다. 송전탑 건설로 지가 하락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송전탑 주변 주민들이 전자파 등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모습도 떠올랐다.
주변 마을 사람들과 토지주들이 한전으로부터 보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토지주들은 토지 가격의 8~31% 수준의 보상비를 받았다. 주변 마을 단위로 공사 협조에 따른 마을공동사업 지원금도 지급됐단다.
하지만 황씨는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 한전은 “송주법(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송주법이 '신설 송전선로(345kV) 최외측 전선에서 13m 이내 토지만 보상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수록 황씨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현재 송전탑 건설은 완료됐고 전선 연결과 페인트 도장 작업만 남아있는 상태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고압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으로부터 불과 35m 떨어진 논에 농사를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불안해서 벼를 심기도 겁이 나요. 이런 상황에서 땅을 사려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테고….”
한전은 송주법에 따라 보상을 진행해야 하는 만큼 지금으로선 황씨에게 어떤 지원도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중부건설처 관계자는 “황씨가 처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송주법에 명시된 대로 13m 이내 토지에만 보상이 가능해 우리로서도 난감하다”며 “지금까지 관련 규정에 따라 토지 소유주 270여명과 주변 마을에 보상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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