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비는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직후인 1871년(고종 8) 제국주의 열강의 조선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에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조선후기 개국과 쇄국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나,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로 납치되면서 대부분 철거됐다.
이영호 문화재담당은 “연기 척화비가 시 기념물로 지정돼 국가지정 4점, 시지정문화재 25점, 문화재자료 13점, 향토문화유산 64점 등 총 10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종=박병주 기자 can7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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