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검은 땀방울은 꽃이 되고…정선 삼탄 아트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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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검은 땀방울은 꽃이 되고…정선 삼탄 아트마인

2001년 문 닫은 무연탄 생산시설, 광부들 샤워실·세화실 등 그대로 시간의 예술이 되거나 아티스트의 손을 만나 작품으로

  • 승인 2016-02-10 20:06
  • 신문게재 2016-02-12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국영화가 있다. 탄광촌 소년 빌리가 가족의 반대를 응원으로 바꾸며 성공한 발레리노가 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 장면에 빌리가 한 마리 백조처럼 날아오를 수 있었던 건 아버지와 형이 파업을 접고 캄캄한 갱도로 내려간 덕분이었다.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 예술에 대한 열정이 묻어나는 영화다.

검은 흙 위에 피운 붉은 열정. 대한민국 제1호 문화예술광산인 삼탄아트마인은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게 했다. 수십년간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들의 땀자국 위에, 수집가가 전 세계에서 모은 10만여점의 미술품, 아티스트들이 피어올린 예술의 꽃이 어우러져 있다.

삼탄아트마인은 1964년부터 운영됐던 삼광탄좌 정암공업소 시설이었다. 전성기 수천만t의 무연탄을 생산하며 1960~1970년대 경제발전에 큰 힘이 됐던 공업소는 2001년 문을 닫은 뒤 2013년 정부의 '폐광지역 복원사업' 계획과 전시연출과 고 김민석 대표의 협업으로 부활했다. 아트센터로 문 연 그 해 공공디자인 대상을 수상하고 2년만인 2015년에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 아트마인 4층 라운지에 들어서기 전 수평갱도 앞의 글귀가 시선을 붙든다. 여기는 850항 수평갱, 해발 850m다. 이 이름의 형식은 해발 832m에 위치한 레스토랑 832L도 마찬가지. 레스토랑은 예전에 탄광 기계를 제작하고 수리하던 곳이다. 높은 천장에 사진, 그림, 조각 작품이 곳곳에 배치돼 갤러리에 온 듯하다. '안전제일' 스티커나 아기천사로 표현한 광부 그림, 손때 묻은 장비들과 함께 소시지와 김치, 달걀프라이, 멸치와 땅콩으로 차려진 광부 도시락을 먹었다. 광부들은 어두운 지하에서, 아니면 갱도 위 풀밭에 모여 먹었을까. 이렇게 좋은 곳에서 먹어도 좋은지 미안한 기분이 들 만큼 인테리어가 훌륭하다.

레스토랑 앞은 기억의 정원이다. 유럽의 온실 같은 프러포즈 카페, 런던의 2층 버스를 닮은 키즈카페, 지하에서 석탄을 끌어 올리던 권양기가 보이는 곳이다. 한 켠에 세워진 녹슨 철판은 곡괭이를 든 광부의 실루엣으로 뻥 뚫려있는데. 1974년 갱도 내 출수사고로 사망한 광부 26명의 넋을 기리는 '석탄을 캐는 광부' 추모탑이다. 우연인지 각도를 맞춰 바라보면 광부의 몸 안 전체가 권양기로 꽉 찬다. 맑은 날이면 저 녹슨 몸도 땅 아래 기억 대신 하늘을 품고 위로 받을까. 속이 빈 광부의 모습은 그 몸을 통과할 바람만큼 외로워 보였다.

광부에게서 등을 돌리고 철길을 따라가면 레일바이뮤지엄이다. 탄좌에서 캐낸 석탄을 집합시키는 시설로 가운데 직경 6m, 깊이 600m의 원통형 수갱과 조차장이 있던 곳이다. 안은 마치 방금까지도 석탄을 날랐을 것 같다. 햇살을 건 창문은 캔버스 액자처럼 새하얗게 빛나고, 그 너머로 아직 푸르지 못한 나무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느와르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진한 회색 철로와 검은 벽. 오래된 냄새로 가득해 비장하게까지 느껴지는 공기. 잿빛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예술이 된 광부들의 시간이 증명한다.

광부가 아닌 이들의 손을 빌려 태어난 작품은 다른 색이다. 레일 위에 놓여진 붉은 꽃 조형물 세 송이가 유난히 생생한데, 퍼포먼스 아티스트 신용구 작가가 광부들의 열정과 삶의 희망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작품이다.

아트센터 본관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따라 올라오면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 세계의 마차, 풍금체험 등 다양한 전시실이 줄지어 있다. 안전모에 달린 전등을 충전하던 캡 램프실, 장화를 씻던 세화장, 이력서와 월급명세서 등 온갖 서류를 차곡차곡 쌓은 방도 갤러리다. 작업복을 빨던 세탁기에선 사람 모양을 한 옷이 뛰쳐나와 날아갈 듯 하고, 검은 때를 벗겨냈을 샤워실에는 거품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 조각들이 대신 서 있다. 땀과 기름으로 얼룩진 공간들이 작품이 되어 빛났다.

계단에 줄지어 선 광부 그림이 오르고 내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3층 미술관엔 안전모를 쓴 남자의 검은 얼굴로 꽉 찬 캔버스가 벽에 걸려 있다. 오늘도 무사했나요. 다정한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은 고단한 표정 위로 4층 라운지에서는 커피 향과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어느 날의 추억이 될 오늘을 캐 올리는, 여기는 여전한 탄광이었다.

▲가는길=터미널·역에서 만항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못골찜질방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승용차로는 단양방향 38번 국도와 414지방도를 타는 걸 추천한다.

▲먹거리=광부도시락은 이름만으로도 먹어볼 가치가 있다. 피자 등 다른 식사메뉴와 단체 손님을 위한 바비큐 파티도 준비되어 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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