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균 선수= 한화이글스 제공 |
프로야구선수에게 등번호는 유니폼에 새겨진 숫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 이름 대신 등번호로 이야기한다. 프로야구선수에게 등번호는 또 다른 이름이다.
지난해 FA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정우람과 심수창은 각각 57번과 1번을 달게 됐다. 정우람은 SK시절에도 줄곧 57번을 달아왔다. 심수창은 LG, 넥센 시절에는 박찬호 선배를 좋아한 탓에 61번이 연상되는 67번을 달았지만, 롯데에서는 17번을 달았었다.
이용규는 KIA 시절 15번을 쭉 달았다. 그러나 한화 이적 첫해 1번으로 바꿨다. 15번의 갖는 한화의 상징성 때문이다. 한화 레전드로 불리는 구대성의 번호였다. 이용규 입단 당시 투수 최대 유망주인 유창식이 15번을 달고 있었다. 이에 이용규는 1번을 달면 부상을 덜 당한다는 무속인의 말에 1번을 차선책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15번을 되찾았다. 유창식이 15번의 무게감 때문에 부담감이 든다며 번호 교환을 제안했다. 올 시즌 이용규의 번호는 15번이다.
정근우는 2005년 프로 데뷔 후 줄곧 8번을 달았다. 아마추어 시절 쭉 16번을 달았지만, SK입단 당시 김원형 투수의 등번호였다. 당시 신인으로 8번과 31번 두 개 중 선택을 해야 했고 결국 숫자가 작은 8번을 선택했다. 정근우는 “팔자 고쳐보려고 8을 선택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배영수는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리며 삼성 시절 25번을 달았다. 하지만, 한화 이적 후 최진행과 겹쳐 기존 번호 대신 37번을 선택했다. 삼성에서 25번을 선택한 것은 25살까지 에이스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배영수가 37번을 고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FA 계약이 37살에 끝나는 만큼, 그 안에 다른 목표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권혁은 삼성에서 달았던 47번을 그대로 달고 있다. 47번은 좌투수 에이스의 상징 같은 번호다. 한화 이적 후 47번을 달던 윤근영이 kt의 특별지명을 떠나 힘들지 않게 47번을 달 수 있었다.
송은범은 KIA에서 21번을 달았지만, 한화의 21번은 송진우 해설위원의 영구 결번이라 달수 없었다. 이에 SK 전성기 시절 달았던 46번을 달기를 원했지만, 재계약을 추진 중인 외국인 선수 펠릭스 피에의 번호였다. 송은범은 화투놀이에서 ‘46은 망통, 54는 9끗’이라며 54번을 차선책으로 선택해 입단식까지 치렀지만, 이후 피에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다시 46번을 달게 됐다.
김태균은 52번으로 상징되는 선수다. 천안 북일고 진학 당시 아버지가 직접 골라준 번호다. 숫자의 형태가 모가 나지 않아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화 입단 당시에도 52번을 단 선배가 없어 신인 김태균의 차지가 됐다. 이후 2년차 때 잠시 ‘악바리’ 이정훈 감독처럼 강타자가 되라는 뜻에 잠시 10번을 달았지만 2년차 징크스를 겪고 이듬해 다시 52번을 달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쭉 52번을 사용하고 있다.
박정진은 입단 후 여러 번호를 바꿔달다 지금은 17번을 달고 있다. 방출 위기를 넘긴 후 “이제는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가장 친한 친구가 대학시절 쓰던 17번으로 바꿔달았다. 이후 그는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노망주’, ‘박투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 최고의 유격수를 상징하는 등번호 7번은 송광민이 달고 있다. 김재박 전 LG 감독, 이종범 한화 코치, 박진만(SK) 등 유격수 포지션에서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의 등번호가 7번이었다.
안영명은 45세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뜻으로 김 감독이 추천했던 38번을 놓고 45번을 달고 있다.
윤규진은 입단 후 우상인 정민철 해설위원과 비슷한 번호를 달고 싶어 50번을 달았는데 정민철이 55번을 직접 물려줬다. 이후 정민철은 부진탈출을 위해 23번을 등에 새겼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정민철의 영구결번이 전성기에 달던 55번이 아니라 23번이 됐다는 점이다. 한화에는 정민철 이외에도 영구결번이 2명 더 있다. 송진우의 21번과 장종훈의 35번이다. 10개 프로구단 중 가장 많다.
이외에도 암묵적인 결번이 하나 있다. 바로 99번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의 번호로 누구도 탐을 내지 않고 있다. 다시 돌아와 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류현진은 입단 후 구대성이 계보를 이어달라며 15번을 배정받았지만, 3개월 후 구대성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99번을 달게 됐다. 이후 류현진은 99번을 달고 트리플크라운을 달성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최우수 선수와 신인왕을 동시 석권했다. 이후 한화에서 뛴 7년 동안 통산 98승(시즌 평균 14승)을 올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가 됐다.
지난해 시즌 중후반 미국에서 날아와 큰 화제를 일으킨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의 등번호는 42번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42번은 아무도 달수 없는 번호다.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업적을 기리고자 사상 첫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은 2007년 SK 감독 시절부터 지금까지 38번을 달고 있다. 일반적으로 감독들은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는 70번대 이상의 번호를 달지만, 김 감독은 38은 화투놀이에서 ‘광땡’을 뜻하는 행운의 숫자이기 때문에 달고 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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