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 1882년부터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면서 각 나라들은 공사관을 설치하게 되는데, 이때 자기나라의 음식을 들여오면서 커피도 같이 자연스럽게 들여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1885년 영국 부영사 '칼스(W.A Carles)'가 부임하면서 조선의 세관원이었던 '묄렌도르프'의 집에 묵게 되는데 “커피를 마시게 되는 사치스러움에 감사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고, 또한 1885년 '퍼시벌 로런스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의 저서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조선의 풍속문화를 기록한 책'에서 1884년 1월 추운 어느날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최신 유행품'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1884년 이전에도 조선에서 커피가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관파천 12년전) 그리고 1884년부터 3년간 의료선교사였던 '알렌(H.N.Allen)'은 그의 일기에서 “어의로서 궁중에 드나들 때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조선의 선각자 유길준은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최초로 일본 유학생이 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1884년까지 미국에 체류하였고 유럽을 여행했으며 싱가포르와 홍콩을 거쳐 1885년에 귀국합니다. 1895년 유길준은 일종의 계몽서인 '서유견문'을 출간합니다.
그 책 제 16편에 서양음식을 소개하면서 “커피와 차를 우리나라에서 숭늉 마시는 것처럼 마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최초로 커피를 접한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책에서 유길준이 직접 커피를 마셨다는 내용은 없지만 1883년부터의 2년 동안 서양음식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도 접했을거라 생각됩니다. '서유견문'에서 유길준은 커피를 음역화하여 茄菲(가비)라는 한자로 표기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까지 가배, 가비, 카피, 가피, 코피, 코히 등으로 불리다 해방 이후 '커피'로 정착하게 됩니다.
박종우 바이핸커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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