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아침 논산 수희네 집. 수희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이 병원 갈 준비를 서둘렀다. 5살 난 수희의 재활치료를 위해서다.
수희는 생후 2개월째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수희 아빠와 엄마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딸을 안고 병원을 찾는다. 정기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면 수희의 몸이 뒤틀리기 때문이다. 주변에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이 없어 대전 혹은 서울까지 원정 진료를 다닌다.
이날은 수희가 잠든 신경을 되살리는 작업치료와 뒤틀린 몸을 바로 잡는 물리치료 등 대전의 2개 병원에서 4가지 치료를 받는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치료가 예정돼 있어 엄마의 마음은 급하기만 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엄마는 수희와 4살짜리 여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길. 엄마는 운전을 하면서 수희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악마의 장난일까. 오전 8시께 양촌 IC 부근에서 승용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버스를 들이 받고 말았다.
이 사고로 수희는 지금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숨을 쉬고 있다.
엄마도 허리에 큰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아야 한다. 동생도 팔에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
수희 아빠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최근 수희가 유치원 재롱잔치에 참여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지던 터라 하늘이 더욱 야속하다.
이 같은 비극은 수희네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장애아동 가족들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루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몸이 틀어질 정도로 재활치료는 중증장애아동의 생명과 직결된다.
그러나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이나 시설이 부족해 수희처럼 치료를 위해 병원을 떠도는 '재활난민'들의 고통은 커져만 가고 있다.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대전에서 집중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충남대병원과 건양대병원, 보람병원 등 3곳이다. 충남대병원 20명, 건양대병원 16명, 보람병원 14명 등 소아 낮 병동 형식으로 모두 50명을 수용한다. 외래진료는 11개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대기자가 많다보니 최대 6개월만 치료받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외래도 사람이 몰리다보니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대기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다보니 중증장애아동 가족들은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국 곳곳을 떠돌고 있다. 이들이 재활난민이라 불리는 이유다.
지난해 기준 대전에는 1821명이 중증장애아동으로 등록돼 있다. 집중재활치료가 필요한 인원은 최소 500명에 달한다. 충남에 등록된 중증장애아동은 2000여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건우의 아빠 김동석씨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에게 수희 가족의 일은 남일 같지 않다”며 “중증장애아동의 치료를 위한 전문적인 사회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수희 가족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지자체와 각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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