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장,이문제]응급실 난동꾼 기승…병원이 병들고 있다

  • 문화
  • 건강/의료

[이현장,이문제]응급실 난동꾼 기승…병원이 병들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92% “폭력경험” … 유형별 언어폭력·신체위협·폭행 順 병원 이미지 탓에 '참고말자'식 대처 … 의료인폭행방지법 등 법적근거 시급

  • 승인 2015-12-23 17:45
  • 신문게재 2015-12-24 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이현장,이문제]

#1. 만취상태의 30대 남성이 지역 A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술자리 시비로 한바탕 싸움을 벌여 얼굴에 피가 흥건했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혼잣말로 “다 죽여야 한다”며 중얼거렸다. 간호사가 인적사항을 묻자 그는 갑자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남성은 고성을 지르며 의료진에게 주먹을 내지르고 발길질을 하는 등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2. 30대 부모가 5살 아이를 안고 지역 B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아이의 발열증세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 부모는 다짜고짜 반말과 욕설을 섞어 의료진에게 진료를 요구했다. 이들은 열을 내리기 위해 주사를 놓으려는 간호사에게 “제대로 못 놓으면 눈깔을 뽑아버리겠다”,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의료진의 몸과 마음이 환자나 보호자의 무차별 폭행과 폭언에 멍들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지만, 폭행수위가 높아지거나 입에 담기 힘든 폭언으로 점점 발전해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대한응급의학회의 '응급실 폭력과 폭행 대응의 이해와 변호 조사'를 보면, 2013년 기준 응급의학과 전공의 236명 중 218명(92.4%)이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는 언어폭력이 201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체적 위협(140명), 신체적 폭행(59명) 순이었다(복수 선택).

실제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들도 일주일에 1~3번은 언어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다고 말한다. 올해 대표적인 응급실 폭행으로는 지난 7월 경기 중앙성모병원에서 만취자가 야간 당직의사를 구타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같은 달 세종의 한 병원 응급실에선 40대 남성이 간호사를 흉기로 위협하며 인질극까지 벌였다.

더 심각한 점은 의료진 폭행이 응급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엔 일반 병의원을 찾은 환자·보호자들도 폭행과 폭언을 일삼고 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응급의료를 방해하거나 의료용 시설 등을 파괴·손상 또는 점거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폭언·폭행을 당한 의료진 대부분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

경찰이 병원과 환자간의 문제로 인식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고 생각해서다. 또 병원이 평판 때문에 조용히 합의하거나 당사자에게 처리를 전적으로 맡겨 '참고 말자'는 경우가 많다.

병의원 등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을 보호하는 법안은 아직 없어 일선 의료인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의료인 폭행 처벌 범위를 응급실뿐만 아니라 의료현장 전체로 확대하는 '의료인폭행방지법'이 상정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안건 목록에도 들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인 폭행방지법의 조속한 제정과 병원의 적극적인 법적 대응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충남대병원 유인술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료진 폭행은 의료인 당사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진료권을 빼앗는 범죄행위”라며 “이를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의료인 폭행방지법과 같은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며, 병원은 법무담당자를 지정해 법적인 대응에도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2.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3.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