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획과 공약을 남발하며 어느 때보다 뜻 깊은 을미년을 보내겠다 다짐했지만 이뤄진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도 든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곳을 찾고, 가을 단풍을 찾아다니던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이제 첫 눈이 언제 내렸나조차 가물가물하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일출을 보러가자고 한다. 새해 첫 날의 기운을 받자는 취지다. 가족, 친구, 연인 등이 멀리 못가더라도 재야의 종을 치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가까운 산, 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면 사람들로 넘쳐 난다. 우리나라도 일출명소로 소문난 곳이 제법 많다. 땅끝마을, 왜목마을, 포항 호미곶을 비롯해 지역의 명산인 계룡산과 식장산, 계족산 등 1월 1일은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명소는 워낙 사람이 많은 터라 이제 슬슬 지겹고 무성한 소문만으로 몇 번은 다녀온듯 하다. 이번엔 조금은 덜 알려졌지만 그런 만큼 좀 더 여유롭고 한가하게 일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본다.
출발은 통영이다. 통영도 워낙 이름난 관광지라 많이 가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통영 하면 중앙시장 앞 여객선터미널이나 유람선선착장만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통영에는 삼덕항도 있다. 삼덕항은 통영 유람선선착장의 반대쪽으로 가야한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현지인들이 많이 이용하다보니 상대적으로 한산한 편이다. 이곳에서 욕지도로 들어가는 배를 먼저 타야 한다. 한산한 항이라고는 하지만 삼덕과 욕지를 운항하는 배의 규모는 작지 않다. 차량과 사람을 모두 싣고 운항할 수 있는 제법 큰 규모의 배다. 차를 싣고 가도 되고 가볍게 몸만 떠나도 좋다.
삼덕항에는 오전 5시 30분까지 도착해야한다. 날이 춥고 바람이 쌀쌀하니 옷을 두껍게 준비하자. 이내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삼덕항에서 욕지도까지는 뱃길로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욕지도로 향하는 중간에 선상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게 특징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선장의 묵직한 목소리가 잠든 배안을 깨운다. 선장의 방송에 맞춰 2층 실내에서 몸을 녹이다 다시 3층으로 올라간다. 저 멀리 떠오르려고 준비하는 태양의 움직임이 예상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늘 보는 태양인데 1월 1일이나 바다에서 보는 태양은 왜 설레이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후 거대한 태양이 수평선을 뚫고 올라온다. 여기저기서 다른 여행객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다들 새해 첫 일출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출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시간은 길지만 태양이 금세 떠오르기 때문에 딴 짓은 곤란하다. 셔터소리가 귓전을 울리며 차가운 바닷바람이 살을 엔다. 그러나 눈은 오직 태양에 고정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부처님, 예수님. 새해엔 이것 저것좀 이뤄질 수 있게 해주시고요, 가족 건강하게 해주시고요, 복권 당첨되게 해주시고요.' 내가 생각해도 참 많다. 1년 내내 찾지 않던 부처님, 예수님이 다 나온다. 그렇게 소원을 빌고 새해엔 꼭 이루겠노라고 스스로 몇 가지 다짐을 하고나니 여명이 밝아오며 확 틔인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욕지도로 향하는 배는 중간에 연화도라는 작은 섬을 경유하는데 이곳 또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바로 욕지도로 갈 사람은 섬에 내려 아침식사를 하고 섬 안의 공영버스가 운행중이니 이 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연화도의 공영버스 기사님은 욕지도 이장님이다. 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셔서 섬에 대한 설명이 풍부하다. 욕지도는 귤과 고구마가 유명하며, 자연산 고등어회가 일품이다. 좀 더 색다른 일출을 원하는 사람은 전날 섬에 입도해 욕지도의 삼여전망대라는 곳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권한다. 나만의 일출과 색다른 여행을 계획중이라면 휴대용 가스렌지와 코펠을 준비해 커피나 라면을 끓여먹으며 기다리는 일출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가는길=통영 삼덕항에서 욕지도로 가는 배 편을 이용한다. 오전 5시 30분까지 도착해야하며 요금은 1만 9200원이다.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된다.
▲먹거리=고등어회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요리를 비롯해 짬뽕집도 있어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하면 된다.
이성희 기자 token77@
자료제공=(주)태평양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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