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도 감겼다 풀렸다 하는 스티어링휠의 숨 가쁜 움직임에 녀석은 민감하게 반응하다 가도 이내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녀석의 이름은 벤투스(Ventus) RS-3. 포뮬러와 GT(Grand Touringcar)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한국타이어의 대표적인 초고성능 타이어 제품이다.
지난 9일 오전 인천 BMW드라이빙센터에서 한국타이어 주관으로 '브랜드 체험 미디어 데이'행사가 열렸다.
독일 명차 BMW가 아시아 최초로 인천 영종도에 건립한 축구장 33개 규모의 자동차복합문화공간에서 우리나라 토종 타이어브랜드를 만난다는 건 다소 설면했다. 아마 브리지스톤이나 미쉐린, 굿이어 등 유수의 외국 타이어제조사들이 머리를 스쳤으리라.
한국타이어는 세간의 이런 업계 줄세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해 10월 BMW코리아와 인천 드라이빙센터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오는 2016년까지 드라이빙센터 내 트랙과 체험프로그램에 쓰이는 모든 차량에 한국타이어가 만든 초고성능 타이어를 포함해 모두 6종의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게 된 것이다.
1999년 회사 설립 50여 년 만에 포드 트랜짓(transit) 트럭의 OE(Original Equipment·순정부품) 타이어를 공급하며 해외에 진출한 한국타이어는 이어 2001년 폭스바겐 제타, 2003년 폭스바겐 폴로, 포드 F-150 트럭에 OE 타이어 공급을 연달아 성사시키며 유럽과 미국시장을 공략했다. 한국타이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3년 국내 타이어 기업 최초로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 독일 3대 명차에 대한 OE 타이어 공급을 발표한 이래 포드 올뉴 머스탱, 뉴 아우디TT 등 럭셔리 스포츠카와 하이엔드 슈퍼카 포르쉐에도 OE 타이어를 공급하며 글로벌시장의 영토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우병일 한국타이어 G.OE부문장(전무)은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32개 글로벌 자동차메이커에 신차용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자동차제조사들이 순정부품으로 한국타이어 제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제시한 까다롭고 엄격한 타이어 요구성능들이 100% 이상 충족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날 브랜드 미디어데이는 BMW드라이빙센터 소속 강사의 안전교육에 이어 한시간 여 한국타이어 제품이 장착된 BMW차량 시승으로 진행됐다.
트랙 한 쪽에 도열한 BMW의 화려한 외관에 한눈을 판 건 잠시. 이내 2t이 넘는 차체 중량을 네 어깨에 나눠 이고 있는 까만 타이어에 시선이 꽂혔다.
먼저 BMW118d에 올라탔다. 최고 출력 150마력, 최대 토크 32.7kg·m의 성능을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8.1초가 걸린다는 이 차엔 한국타이어의 벤투스 S1 evo2(K117)가 장착됐다.
한국타이어가 후원하는 DTM(독일투어링카마스터즈) 레이싱 기술이 적용된 K117은 섬세한 조종 안정성, 코너링 성능을 제공한다는 품평에 어울리게 기자의 미숙한 핸들링을 묵직한 편안함으로 소화해내는 듯 했다. 이어진 MINI JCW 시승에서 만난 벤투스 Prime2(K115)는 뛰어난 정숙성과 더불어 낮은 회전저항, 빗길 제동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K115는 최대 200㎞까지 가속할 수 있는 트랙을 지나면서도 차량의 격렬한 엔진음과 지면소음을 빨아들였다.
M트윈파워 터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고출력 V8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560마력, 최대토크 69.4kg·m를 자랑하는 BMW M5는 벤투스 RS-3(Z222)가 맡았다. Z222는 레이싱 마니아를 위한 익스트림 퍼포먼스 타이어로 코너링 때 부하를 가장 많이 받는 부분에 강화나일론커버를 적용, 타이어 변형을 최소화한다. 특히 가속페달을 밟고 4초만에 시속 100㎞에 도달하는 M카 특유의 즉각적인 동력을 그대로 받아 질주하는가하면 굴곡진 좌우턴 구간에서 펼쳐진 전문 드라이버의 드리프트에도 무게중심을 크게 잃지 않는 안정감을 선사했다.
소수점대 기록 경쟁을 펼치는 육상에서 맨발의 스프린터를 생각할 수 없듯 갈수록 하이엔드로 치닫는 고급차 시장에서 최상의 접지력과 제동력, 안정된 코너링 능력을 가진 초고성능 타이어를 장착하지 않으면 드라이빙 퍼포먼스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한국타이어 측 설명이다.
시승이 끝나 트랙을 돌아 나오는 길. 우리나라 인천에 만들어진 24만㎡ 규모의 너른 BMW드라이빙센터 곳곳에 아로새겨진 한국타이어의 까만 스키드마크(skid mark)가 마치 옛 왕들이 국토를 넓힌 뒤 국경을 돌아보며 세웠다는 순수비(巡狩碑)처럼 여겨졌다.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 송영 상무 일문일답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1984년 입사해 31년 동안 OE/RE 상품개발 업무를 주로 해왔는데 이 자리에서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과거 금산공장 건설 전엔 실차테스트(vehicle test)할 수 있는 곳이 없어 해수욕장 개장일에 맞춰 새로 깔린 도로에서 테스트하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간 적이 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공군 활주로를 빌려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무모했지만 그만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때론 무모해 보일지라도 저돌적으로 일을 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타이어가 프리미엄 OE 공급의 성공신화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공략해야 할 글로벌 시장은 여전히 넓다. 프리미엄 신규 OE공급이 어려운 이유가 있나.
신규 개발되는 차량은 2~3년의 장기 프로젝트로 시작되는데 타이어도 마찬가지다. 3단계 과정에 5차례 테스트를 거치면 타이어 개발에 평균 24개월이 걸린다. 또 신차의 기술 발전 등과 함께 신차용 타이어도 성능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명확한 기준점이 없다. 그래서 신차용 타이어 개발을 무빙타깃(Moving Target)이라고도 한다.
-글로벌 OE 공급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1999년 포드에 OE공급을 시작했다. 글로벌 OE 공급 프로젝트 중 단 한 순간도 쉬운 적은 없었다. 2011년 BMW에 국내 업계 최초로 공급이 시작돼 이제 전 차종에 OE를 공급하게 된 것도 노력이 이룬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하이엔드(High-End) OE 공급계약을 한 포르쉐 마칸의 경우도 역경의 연속이었다.
-딱 잘라서 좋은 타이어란 어떤 것인가.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타이어의 성능을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들다. 타이어의 기본 기능은 차량의 하중을 지탱하고 구동력 및 제동력을 지면에 전달하며 노면으로부터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빗길에서도 잘 서고 잘 달리고 방향전환 잘되고 정숙하면서도 연비가 좋고 오래 탈수 있어야 한다. 한국타이어는 이런 측면에서 해외의 경쟁업체들과 비교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해 있다.
-한국타이어는 '기술의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렇다. 한국타이어는 연구개발과 연구인력 투자를 최우선에 둔다. 지속적인 기술 혁신으로 고연비 컴파운드, 경량화 기술, 최적의 타이어 프로파일 설계 기술 등에서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퀄리티 레벨업(Quality Level Up)이라는 전사적 전략방향에 따라 한국,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5개국 연구개발센터에서 현지 기후 조건과 도로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타이어를 개발 중이다.
-현재 대전에 한국타이어의 중앙연구소인 '테크노돔'을 건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은 세계적인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 노먼포스터(Noman Foster)가 설립한 포스터앤파트너스(Foster+Partners)사의 디자인으로 연면적 9만여㎡(약3만평) 규모로 건립 예정이다. 최첨단 기술력을 상징하는 신축 중앙연구소는 차별화된 연구 설비를 갖추고 고객들의 프리미엄 타이어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세계일류 타이어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리=문승현 기자 hey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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