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청은 부여 구드래 일원과 서나성 내 유적에서 직사각형 얼음 저장 공간과 배수로 등을 갖춘 빙고 2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백제시대 빙고.[문화재청 제공] |
문화재청은 부여군과 백제고도문화재단이 지난 4월부터 발굴조사 중인 부여 구드래 일원(명승 제63호)과 부여 서나성(사적 제58호) 내 유적에서 백제와 조선시대 빙고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부여 구드래 일원과 서나성은 부소산 서측 백마강 나루터와 사비도성의 서측 추정나성을 가리킨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소산성, 정림사지 등을 포함한 사비도성의 중요 지점이다.
조사 대상지 일대는 옛 관아가 있던 마을로 빙고재와 장승베기(장승이 있던 곳), 구드래(큰 나라) 등의 고유지명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제작된 특수지형도와 1998년에 제작된 지도에서도 빙고리, 빙고재로 기록된 곳이다. 조선 후기(영조 연간~현종 연간) 편찬된 '충청남도읍지'에 “현내면 빙고리는 관아에서 서쪽으로 1리(약 400m) 떨어져 있다”고 기록돼 빙고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았다.
발굴조사 결과 실제로 백제와 조선시대 빙고가 함께 확인됐다. 이번에 확인된 빙고는 백제 사비기 빙고로 추정된다. 그동안 발굴된 백제시대 빙고로는 한성 도읍기 연기 나성리 유적, 웅진기 공주 정지산 유적빙고 등이 있다.
조선시대 빙고는 조선 전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목조 빙고로 홍성 오관리 유적에서 확인된 조선 시대 빙고와 형태와 규모 면에서 상당히 유사하다. 18세 이후에는 석빙고 형태를 띠어 빙고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빙고는 얼음을 저장하는 장방형(직사각형)의 구덩이와 얼음물을 내보냈던 배수로로 구성됐다.
현재 유적의 잔존 규모를 통해 부피를 계산해보면, 백제시대 빙고는 약 48㎥, 조선 시대 빙고는 약 100㎥ 정도다. 빙고 내부에 얼음을 가득 넣을 경우 15t 트럭으로 백제 시대 빙고는 최소 5차 분량, 조선 시대 빙고는 약 10차 분량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빙고는 부여 구드래 빙고재와 관련해 고유지명과 문헌기록 증빙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추진될 부여 구드래 일원과 서나성의 문화유적 정비 기본계획 수립과 함께 사비도성 내 백제와 조선시대 얼음 저장시설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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