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대전체육포럼 사무총장 |
일본인의 의심을 피해 민족정신 함양을 위한 수단이었던 체육행사들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을 전후로 조선인들의 경기력이 급상승하게 되고 항일 의식이 거세지자, 일본은 1938년에 조선체육회를 강제 해산하고 민족체육을 억압했다. 결국, 전조선경기대회(전국체전의 전신)를 중단시키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더불어 그해 12월 초에 자유해방을 경축하는 전국종합경기대회를 열었는데, 이 대회가 제26회 전국체전이다.
또 1951년에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체육인들의 굳센 의지와 집념이 이루어낸 제32회 대회가 광주에서 개최됐다. 이후 꾸준한 호국의 일념과 조국 근대화, 국가 홍보, 국력 신장을 위해 전국체전을 개최해 왔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스포츠강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됐다.
이러한 노력과 축적된 경험을 통해 2002년 월드컵 개최와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대구 세계육상경기대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을 유치해냈다. 전국체전을 통해 성장한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은 전 세계의 경기장과 TV 중계를 통해 대한민국의 성장을 알리고 있다.
이렇게 민족체육과 국위선양의 최선봉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 온 전국체전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시·도가 1위를 한 것은 4회에 불과하며, 대전은 체전을 개최한 1994년과 2009년의 3위를 제외하면, 지난해에 달성한 10위가 최고의 성적이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는 '전국체육대회의 문제점 진단과 개선방안'을 조사하고 있다.
전국체전의 가장 큰 성과는 도시발전과 우수선수 발굴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성장시키는 동안 체육인들은 적은 예산으로 최고의 성과를 얻고자 수십 년간 서로 싸워야만 했다. 그 결과로 누군가는 영광을 얻었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직장을 잃고 새 직장을 구해야 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연금이 적거나 없고 미래가 어두워졌다. 이것이 수십 년간 쌓이면서 국가대표를 지냈으면서도 무직으로 노후대책이 없는 은퇴자가 3분의 1에 이르게 됐다.
전국체전은 과거와 달리 국가적 재정 지원이 미비해 더는 도시발전을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도의 재정 지원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철새 운동선수가 되어 돈을 찾아 날아가는 모습을 관망할 수밖에 없고, 이를 막고자 시·도 체육회는 선수 영입비를 과다하게 지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기종목 증가로 많은 종목에 불참하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고, 시ㆍ도간 운동부 수와 실업팀 수가 다른 상황에서 취득 점수를 환산하는 종합순위제와 개최지 심판진의 편파판정과 운영 미숙, 개최지 10% 가산점 부여도 형평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체육회는 매년 다음 연도 체전 대비 계획을 수립할 때마다 반복하는 대책이 있다. 학교운동부와 실업팀 육성, 예산 증액이다. 해마다 똑같은 대책을 세우지만 언제나 미봉책으로 크게 개선된 적은 없다.
훌륭한 성과를 내려면 더 큰 투자를 해야만 한다. 더 좋은 훈련 환경을 만드는 일, 지도자들의 현실적인 급여와 처우를 개선하는 일, 실질적인 체육 예산을 확대해 주는 일 등이 시급한 과제다. 과연, 대전시에서 누가 해야 하는 과제일지.
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대전체육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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