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을 보러 온 여행자에게 김제가 특별히 관대할 이유는 없었다. 하늘과 땅의 평행선은 관광을 위해 그어놓은 게 아니라 농민의 풍경이다. 여느 소도시와 다를 것 없는 역 앞에서 시민들과 똑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한참을 달렸다. 시장을 지나고 어느 작은 마을 어귀에 몇 번 정차하면서 알았다. 이 땅은 곧고 넓다. 작은 산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차비를 교통카드로 내는 사람은 이방인 뿐. 버스의 고객들은 내릴 때 지폐나 동전을 내밀었다. 벽골제단지에 내리는 사람은 여행객 혼자였다.
사실 벽골제에서 꼭 만나야 할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 요즘 사진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쌍룡이다. 2007년 만들어진 쌍룡은 각각 입에 여의주를 물고 마주 보고 있는데 둘을 합한 길이가 54m, 높이는 15m에 달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제방 100m 하류에는 청룡, 200m 하류 지점 웅덩이에는 백룡이 살아 벽골제를 지켰다고 한다. 멀리서 보기에는 철이나 동으로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대나무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푸른 하늘, 금빛 제방과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그 자리에서 솟아올랐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조화로웠다.
그게 바로 우리의 지평선이라는 건 다시 벽골제로 돌아오며 깨달았다. 기계에 주로 의존하는 거대한 미국식 농경과 달리 한국의 농사는 사람 손이 많이 간다. 논과 논 사이 베어내지 않은 나무 한그루는 농부의 쉼터가 되어 주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 창고는 집이 먼 이들에게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농기구들의 보관처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관광객의 잣대로 기대하는,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이라면 풍요로운 들판은 만들 수 없다. 도로를 뚫고 자란 작은 꽃. 말려놓은 고추. 무얼 그리 찍느냐며 웃으며 지나가던 촌로의 얼굴처럼. 오래 걷는 관광객을 위로해주는 지평선의 풍경이었다.
▲가는길=서대전역에서 김제역으로 가는 기차가 하루 18대 다닌다. 내려서 맞은면 오른쪽으로 건너면 벽골제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시간이 불규칙하고 배차간격이 긴 편이다.
▲가볼만한 곳=조정래 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된 곳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이 인근 죽산면에 있다. 소설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둔 홍보관과 등장인물의 가옥, 하얼빈역도 만들어 뒀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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