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실향민 눈물은 바다가 되고…속초 아바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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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실향민 눈물은 바다가 되고…속초 아바이 마을

주민 열에 여섯은 실향민, 고향서 먹던 아바이 순대로 타향살이 고단함 위로

  • 승인 2015-10-29 14:03
  • 신문게재 2015-10-30 9면
  • 우난순 교열팀장우난순 교열팀장
[주말여행] 속초 아바이 마을

▲아바이 마을과 중앙동을 왕래하는 갯배
▲아바이 마을과 중앙동을 왕래하는 갯배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여행. 딱 맞는 말이다. 대전, 아니 모든 도시가 안개와 미세먼지에 휩싸여 마치 유령도시와 같아 탈출을 감행했다. 강원도에 들어서 청정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쪼그라든 폐가 부풀려지는 것 같았다. 코딱지만한 땅덩이 안에서도 이렇게 다르다니, 딴 세상에 온 기분이다.

속초는 실향민이 많이 산다. 속칭 아바이 마을엔 현재 주민의 60%가 실향민이다. 이복순(84)할머니는 1950년 흥남철수 당시 '메러디스'호를 타고 피란 온 분이다. 빈몸으로 와 막막하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단다. “미국 군인이 무기 버리고 우리같은 민간인 실어와서 우리가 이렇게 살았어.”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는 게 힘들다지만 목소리만은 우렁우렁 힘이 넘친다. 전쟁 전 흥남비료공장 안 병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는 할머니는 거제포로수용소 내 미군의사가 있는 병원서 3년간 일했다고 자랑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29살에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자마자 속초로 오게 됐다고 한다. 속초 사는 이모가 명태가 잘 잡혀 벌이가 괜찮다며 오라 해서 왔는데 아바이 마을이 하꼬방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술도 안먹고 착실했지. 친척이 잡아온 명태를 집에서 말려 팔고 명란·창난젓도 팔았어. 근데 우린 장사할 무기(수단)가 없어 돈을 못 벌었어.”

그렇게 물 설고 낯선 속초에서 고생하며 아들 셋 낳아서 키우다 둘째아들이 스무살에 사고로 죽는 아픔도 겪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는데 아바이 마을엔 아무도 없냐고 물었다. “보면 뭐해. 가서 얼굴만 잠깐 보고 오는데 맘만 아프고. 그래서 여기 사람들도 별로 신청을 안해, 속상하다구.” 청호동 아바이 마을엔 아바이·오징어 순대 식당이 즐비하다. 함경도식 음식으로 실향민들이 고향에서 해먹던 것으로 이젠 전국적으로 알려진 별미다. 맛에 대한 기억은 끈질기고 고집스럽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때 거기서 먹던 음식으로 향수를 달랜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건 다 잊혀져도 혀가 기억하는 그 맛은 떨쳐버릴 수 없는 집요함이 있다.

아바이 마을에는 '갯배'라는 명물이 있다. 자연석호인 청초호와 동해바다를 잇는 물길을 건널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무동력선이다. 도로를 이용해 아바이마을과 중앙동을 왕래하려면 30여분 걸리지만 갯배를 타면 단돈 300원으로 5분도 안걸린다. 사람이 모이면 바로 출발하며 끝과 끝이 연결된 밧줄을 잡아당기며 운행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중앙동 수로변엔 식당과 정박한 고깃배가 어우러져 유럽 어느 도시의 포구를 걷는 것 같아 여행의 기쁨에 들뜨게 된다. 노천카페에서 웃음을 터트리며 차 마시는 청춘남녀, 한 떼의 중년 관광객들, 왁자함 속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노쇠한 갯배 뱃사공. 그리고 저 멀리 동해바다와 맞닿은 해변의 하늘.

부라보콘을 먹으며 어슬렁 어슬렁 걸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길가 의자에 빨간 목티에 벙거지를 쓰고 다리를 척 꼬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작은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김명옥 할머니는 “내가 작년까지 여기 식당에서 삐끼한 사람여. 스물도 안돼 남자와 눈맞아 결혼해서 온갖 고생 다했어. 룸싸롱도 해보구. 남편은 도박에, 술에, 오입질에….” 드라마틱한 삶을 산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범접할 수 없는 강한 눈빛과 자존심이 살아 있었다. 굴속 같은 할머니 집은 허름했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아늑했다. 밥 먹으라며 할머니가 차려준 구운 가자미 한토막과 겉절이, 멸치볶음의 소박한 밥상은 어느 부잣집 진수성찬보다 맛나고 눈물겹다. 밥먹고 나서 극구 사양하는 할머니에게 담배 두 갑을 사드렸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맛있게 피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중앙동 포구에 나왔을 때 탄성을 질렀다. 흰 비늘을 반짝이며 쉴새없이 몸을 뒤척이는 싱싱한 바다와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에 눈 앞이 아찔했다. 밤새 잡은 고기를 경매에 부치고 그물을 터는 어부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이것저것 쫑알대며 묻는 내가 귀찮을 법도 한데 늙은 어부들은 어젯밤에 그물에 걸린 자연산 새우라며 먹어보라고 종이컵에 소주도 따라준다. 요즘은 문어, 가자미, 대구가 많이 잡히지만 명태는 이제 씨가 말라 볼 수가 없단다. 근데 왜 소주가 사이다 맛이 날까?

거친 바다를 품고 주어진 숙명에 내동댕이쳐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 이산의 설움과 타향살이의 고단함에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삶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여정은 헛되지 않았다. 거기엔 진한 눈물과 웃음이 버무려진 한편의 드라마가 있었다.

▲가는길=대전복합터미널서 강릉까지 가서 속초가는 버스를 갈아탄다. 속초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으나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주 없다.

▲먹거리=두 말 할것없이 아바이·오징어 순대와 바닷가라 싱싱한 회가 많다. 회국수도 별미다.

글=우난순 기자

사진제공=속초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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