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내항의 부잔교(뜬다리) |
선급회사에 다닌다는 두사람은 예산이 고향이거나 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했었다고 했다. 여행하다 보면 처음 만나는 사람도 알고보면 인연의 끈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금·토 놀고 일요일은 근무하는데 서비스직은 아니라하고, 무슨 일 하나요?”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흥신소에서 일해요.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뒷조사하러 군산에 왔어요.” “그래서 수첩에 뭘 적은 거구나. 에이, 설마. 농담도 잘하시네. 허허.”
일제강점기 때 쌀 창고로 쓰였다는 낡은 건물들은 스크루 취급상가가 됐다. 안수철(49)씨는 건물의 높은 천장을 가리키며 “저게 일제 때 지은 목재 골조인데 지금도 짱짱해요. 우리는 금방 지은 건물도 바람 한번 불면 넘어가는데 그때 건물은 서너시간씩 두드려도 안부서져요. 우리가 피해의식이 있어서 무조건 욕하는데 배울건 배워야 한다고 봐요.” 늙은 어부의 술취한 목소리와 고깃배 몇 척이 정박해 있는 째보 선창가에서 바라본 군산 내항은 사라져가는 것들의 쓸쓸함을 더했다.
박범신의 소설 『외등』엔 '서산댁'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서산댁은 일제 강점기 정신대에 끌려갔던 전력으로 매독에 걸려 때때로 신경발작을 일으킨다. 여자로서, 평생을 두고 아무에게도 고백할 수 없었던 잔인한 과거와 페니실린조차 쓸 수 없는 오래 묵은 성병으로 고통받는 서산댁. 서산댁이 살아온 인고의 참혹한 세월은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와 맞물려 있다. 아베의 '안보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일본의 적산가옥이 또 현재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대전 가는 저녁 7시 46분 기차를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차창 밖 명멸하는 불빛을 뒤로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성당 야채빵을 쩝쩝거리며 순식간에 두 개를 먹었다.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이 바로 학교다.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여행은 교육의 현장이다. 낯선 여행자에게 조건없이 인정을 베푸는 사람들에게서 감동받고 삶을 성찰한다. 따뜻한 밥 한끼 함께한 아저씨들, 길을 묻는 여행자의 손을 선뜻 잡는 월명동의 마음 따뜻한 노부부. 그리고 역까지 가는 버스를 못 타 애태우는 나를 보고 헌털뱅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며 버스정류장을 찾아나서 준 할아버지.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심장이 딱딱해진 내게 온기를 불어넣은 그들이 바로 스승이다.
▲가는길=서대전역에서 오전 7시 50분 무궁화호가 있다. 1시간 30분 소요. 대전복합터미널에서 1시간에 1대꼴로 간다.
▲먹거리=짬뽕집 복성루가 유명하고 빈혜원은 내부 수리중이어서 못먹었다. 이성당 빵집의 앙금빵은 앙꼬가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고 개인적으로 야채빵이 맛있었다. 소고기무국도 맛있고 바닷가라 해산물도 많다.
글·사진=우난순 기자 woo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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