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 27일 이른 아침 대전 동부경찰서 가양지구대 이지영(30) 순경은 가족들이 잠든 집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매년 가족과 차례상을 준비하고 송편을 나눠먹으며 평범하게 명절을 보내던 이 순경은 지난 4월 경찰 시험에 합격해 직업 경찰이 되면서 그간 명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내고 있었다.
명절날 일찍 아침도 못 먹고 나가는 딸을 보며 부모님은 섭섭해 하지만 이 순경은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오히려 동료 경찰이 가져온 차례 음식을 지구대에서 나눠먹으며 맞은 추석 아침에 보람을 느꼈다.
이 순경은 “명절 날 근무하는 게 싫지 않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들고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이날 대전 중구 선화동의 한 편의점에서도 카운터에서 추석의 보름달을 맞는 이가 있었다.
점장인 어머니 가게서 일을 돕는 김규리(23)씨는 평소 일요일 저녁처럼 추석날 밤을 편의점에서 지샜다.
다들 고향과 가족을 찾아 도심을 떠나 편의점도 덩달아 한산했지만, 대전에 혼자 남아 도시락이나 음료 등을 찾는 고객들도 여전히 찾아왔다.
김씨는 “친척들이 외국에 있어서 명절이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며 “다른 직원들도 명절이라 못 나온다는 얘기가 없이 여느 때 같은 날이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집도 없이 거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는 명절이 더욱 쓸쓸하게 다가왔다.
밝은 달이 뜬 28일 오후 10시 대전역 광장엔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틈으로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운 사람들과 그 옆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고아로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김민호(63·가명)씨는 지역 빵집에서 나눠준 빵을 다른 노숙인과 나누고 있었다.
3년 전 사업이 기울면서 거리로 나온 김씨는 올해 대전의 한 교회에서 나눠준 양말 두 켤레가 유일한 추석 선물이 됐다.
김씨는 “열흘 전 이곳에서 2명이 숨을 거뒀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효인 기자 hyo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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