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거제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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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언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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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널 수 없는 철창. 22살 젊은 청년은 자연의 거대한 입 앞에서 자주 먹먹했더랬다. 2009년 청춘의 조각을 오롯이 바친 섬, 거제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의 조선소 경험은 지금까지도 팍팍한 세상을 견디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여름휴가철이 지나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 해마다 9~10월이면 거제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올해는 남부면에 위치한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를 가보기로 했다. 대전에서 가는 데만 무려 4시간에 가까운 시간, 잠에서 깨어 장승포터미널에 내리면 바닷물이 한참 떨어져 있음에도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먼저 나와 반긴다. 점심식사를 위해 찾은 장승포항. 조선소에서 일할 때 자주 들러 소주한잔 기울이던 하얀 등대에 서 있으니 파도가 켜켜이 부서지고 있었다. 바다가 구름 걸린 가을하늘로 물들어 가는 순간이다.
▲커피보다 진한 바람의 추억=거제에 도착하면 가장 처음 발길을 이끄는 곳은 애광원 애빈하우스에 위치한 윈드밀테라스다. 애광원은 지적장애인들이 자립의 꿈을 키워나가는 사회복지법인 공동거주시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윈드밀테라스는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어떤 관광코스에도 포함되지 않은 조용한 카페다. 장승포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경치 좋은 카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카페에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수제 쿠키가 별미다. 테라스에 앉아 장승포항을 바라보니 저 멀리 작은 배가 출항하고 있었다. 두 등대가 마주한 방파제 사이로 위태롭게 헤엄치듯 나가는 배는 6년 전 거제도에 첫 발을 디뎠던 22살의 젊은 청년과 꼭 닮아있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 거대한 선상에서 연신 땀을 흘리며 내려다봤던 바다.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간 외국인노동자 동료의 까만 피부와 해맑게 웃던 미소가 겹쳐지며 한참동안 조선소에서의 추억을 곱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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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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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히는 것이 어찌 바람뿐이랴=애광원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창 밖 해안가를 따라 나있는 구불구불한 도로와 쪽빛 바다 풍경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40분 정도 달렸을까. 남부면 작은 어촌마을에 위치한 바람의 언덕에 도착했다. 해금강 유람선 선착장이 자리한 도장포 작은 항구 오른편으로 낮게 누워 있는 바람의 언덕은 푸른 잔디로 뒤덮여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나무계단을 따라가니 바람이 주인인 언덕에 도착했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풍차가 있는 언덕 위 벤치에 앉으니 지중해의 경치가 부럽지 않은 또 다른 진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이 연주하는 노래 소리를 사진기에 담지 못해 아쉬울 따름.
국도를 기점으로 바람의 언덕 반대편에는 신선대가 있다. 신선이 쉬어갔다는 곳. 해금강테마박물관에서 시작되는 작은 산책로를 따라 바다를 향해 걸으면 해금강의 절경을 옮겨 놓은 듯 아기자기한 신선대를 만날 수 있다. 바다를 향해 절벽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 위에 서니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섬의 모습이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바다의 장관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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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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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등대가 보일 때=마음의 고향, 거제도.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거제를 찾는 이유는 어느 곳에 가도 만날 수 있는 바다의 포근함과 함께 지친 일상을 달래주는 나만의 비밀공간이자 탈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마음이 수심보다 깊어질 때 찾아오면 언제든 다독여주는 바다. 바다는 22살의 철없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건널 수 없다고 생각했던 철창을 벗어던지고 사회에 나온 지 5년째. 아직도 미숙하고 서툰 점이 많아 눈물지을 날이 많지만 거제의 바람은 더욱 거세게 나를 채찍질 했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어' 거제의 밤바다가 조용히 타이른다. 저 멀리 등대가 비추는 빛을 따라 작은 배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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