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전 A종합병원 한 입원실.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 6명에서부터 가족, 간병인, 병문안객 등 여러 명이 뒤엉켜있다. 한 환자는 병문안 온 친구들이 사온 음식을 함께 먹느라 분주하다. 한 보호자는 긴 간병생활에 지친 듯 병상 아래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청하고 있다. 병동 복도에는 4~5명의 면회객 일행이 몰려다니며 병실을 찾고 있다.
#2. 대전 B종합병원 응급실. 복도와 진료실, 병상 근처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급하게 뛰어다니며 환자를 살피는 의료진말고도 환자 보호자들이 병상마다 2~3명씩 짝지어 있다. 커피를 마시며 응급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보호자가 있는가하면 부상이 경미해 보이는 한 환자는 수액걸이를 직접 밀고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익숙한 종합병원 병실과 응급실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 확산의 주된 원인이었다. 메르스 확진자 186명 중 89명(47%)이 응급실, 64명(34%)이 병실에서 감염됐다. 환자는 물론 가족, 문병객, 간병인까지 낯선 감염병에 걸리며, 메르스 사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여러명이 함께 병원을 방문하고, 가족이나 간병인이 숙식하며 환자를 돌보는 우리의 병문안, 간병문화가 메르스 감염을 확대한 것이다.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응급실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선 '한국식 병문안, 간병, 응급실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문객 면회를 하루 2회로 제한하고, 응급실에는 1인 1보호자 출입 원칙이 시행됐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불필요한 면회를 피하고, 병원 방침에 협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정부가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지 48일째, 한국식 병문안 문화에 변화는 생겼을까. 기자가 지난 한 주간 대전 주요 종합병원들을 살펴본 결과, '우르르 병문안 문화'는 다시 도지고 있었다. 응급실도 사람이 북적이던 옛 모습 그대로였다.
병원별로 하루 2회의 면회시간을 운영하고, 응급실은 환자 1명당 1명의 보호자만 출입하게 하는 등 규정은 세웠지만, 이를 지키는 시민들은 대부분 없어 보였다. 병원 측에서도 환자나 면회객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애써 외면하는 실정이었다.
지난 11일 찾은 C종합병원. 병원 입구는 물론 복도와 벽마다 '감염 관리를 위해 면회시간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면회시간이 지난 시간임에도 병문안을 온 면회객들이 승강기를 타거나, 우르르 병동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회사 동료 병문안을 온 김모(35)씨는 “메르스때야 감염될까봐 무서워 병원 방침을 잘 따랐지만, 종식되고 나니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솔직히 들지 않았다”며 “하루아침에 병문안 문화가 개선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D종합병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면회시간을 준수해달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이를 신경 쓰는 환자나 면회객은 없었다. 자유롭게 병실을 드나듬은 물론 5명 이상 단체 병문안 일행도 여럿 있었다. 이 병원은 따로 면회실까지 마련했지만, 이곳엔 빈 소파와 탁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D병원 안내데스크 직원은 “면회시간을 환자와 내원객들에게 알려주고, 준수할 것을 부탁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일부 면회객들을 제지할 경우 큰 소리로 항의하시는 분들도 있어 현실적으로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다행히 면회객 이름, 연락처, 방문 목적 등을 기록하는 방명록은 운영되고 있었다. 방명록은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이 다시 확산될 경우 이를 조기에 막기 위한 역학조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고질적인 한국식 병문안·간병문화를 바꾸기 위해선 시민의식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민 대청병원 간호부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감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면회시간 제한, 1인1보호자 입장 원칙 등을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설명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병원에서 강압적으로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인 만큼, 앞으로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선 병문안이나 간병, 응급실에 대한 시민의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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