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릿고기를 썰고 있는 유진호 광천설렁탕 대표. |
홍성 광천역 인근 한 설렁탕집.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고개를 들었다.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가 떠오르는 보통의 국밥집답지 않게 웬 20대 청년이 주문을 받고 있었다. '알바생'이려니 했지만, 시골에서 건장한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알바생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그 청년은 “저 사장이에유”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알바생으로 오해받은 주인공은 광천설렁탕 대표 유진호(29·사진)씨다. 지난달 24일 정식 개점한 어엿한 국밥집 사장이었던 것이다.
유 씨는 어렸을 적 이 곳에서 국밥집을 하시던 친할머니의 요리법을 토대로 지금의 설렁탕을 개발했다. 옛날 국밥처럼 진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냄새가 심하지 않고, 깔끔함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누린 냄새가 나지 않았고, 국물은 담백했다. 유 씨는 맛의 비결로 신선한 재료와 1등급 한우를 꼽았다. 진한 국물을 우려내기 위해 가마솥과 24시간 씨름하는 열정도 비결 중 하나로 들었다.
유 씨는 “설렁탕에 들어가는 재료는 무조건 신선하고 좋은 것들만 엄선하고 있는데, 특히 고기는 1등급 한우만 고집한다”며 “솔직히 비용 부담이 크지만 손님들에게 더 맛좋은 설렁탕을 대접하기 위해 앞으로도 1등급 한우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성공한 청춘처럼 보이지만, 유 씨도 현실을 좇기에 급급했던 대한민국 청년 중 하나였다. 대학 전공인 경제학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컸다. 솔직히 자신도 없었다. '이 전공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목표를 잃은 유 씨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몰라 방황했다. 백화점에서 가방과 옷, 신발도 팔아보고, 족발 배달, 술집 서빙, 통역, 행사 관리, 교육감 후보 수행비서 등 닥치는 대로 부딪쳤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와 꿈을 찾진 못했다.
그러던 유 씨는 지난 5월 고향인 광천을 찾았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동네를 돌던 유 씨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대전 거리마다 하나씩은 있는 국밥집이 자신의 고향엔 없는 것이었다. 순간 국밥집을 하셨다는 친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국밥 한 그릇 먹고 싶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도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그날로 할머니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으며 음식 공부를 시작했다.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하고 싶은 선한 욕심이 유 씨의 결심에 큰 역할을 했다.
최종 목표를 묻는 기자에게 유 씨는 설렁탕집 체인점 운영을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설렁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멀리서 오셨던 분들이 다시 찾아주는 경우가 많아유. 오실 때마다 우리 동네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유. 더욱 노력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제 설렁탕집을 만들거에유. 또 설렁탕 한 그릇 하러 오셔유.”
홍성=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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