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읽기]거친 내면과 마주보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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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책읽기]거친 내면과 마주보게 하는 소설

  • 승인 2015-08-06 14:14
  • 신문게재 2015-08-07 17면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 김명순 안산평생학습도서관
▲ 김명순 안산평생학습도서관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싸늘한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김영하의 소설은 명징(明徵)해서 더 아리고 깊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작가가 2004년에 펴낸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6년만에 선보인 소설집이다. 모두 12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김영하의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다. 구태여 길게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읽는 동안 전혀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사족처럼 달라붙는다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명쾌한 문장과 차가운 현실인식, 에둘러 설명하지 않는 그 만의 글쓰기 방식이 그의 소설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인지 모른다.

'삶이란 별 게 아니다. 젖은 우산이 살갗
▲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에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라고 독백하듯 중얼거리는 <로봇>의 주인공 수경의 모습에서 삶의 속살을 들켜버린 민망한 기분이 든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견딘다. 단지 사람마다 견뎌내려는 것의 내용과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때론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맨 살갗에 닿는 젖은 우산을 맥없이 견뎌내기도 하고 기어 올라올 수 없는 깊은 절망의 우물 속에서도 두 발을 첨벙거리면서 견딘다.

그리고 어느 날 우뇌의 친밀감의 정보를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돼 그간의 모든 기억을 잃고 친밀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카푸그라 증후군에 걸린 남편과 살아야 하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친밀감의 세포를 잃어버린 남편 때문에 창백한 애정결핍 증세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현실 속의 우리는 증후군을 앓고 있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냉담해 질 수 있다.

김영하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겉으로 보기엔 특별하지 않으며 어딘가에서 한번 쯤 마주쳤음직한 낯익음이 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인물이 가진 특별한 역사가 있다. 오래 전 찰리 채플린이 이야기했듯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비관적이거나 회의적이지는 않다.

작가가 말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자의 모습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자기 앞에 놓인 현실에 두 눈을 감지 않는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자신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차근히 풀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소설가 김영하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던 '최고의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언행일치가 소설 곳곳에서 목격된다. 김영하 작가는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의 고백이 실현되는 지점을 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서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직도 나는 소설 속에서 만난 인물들이 수시로 말을 걸어 와 고요할 틈이 없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문뜩 문뜩 던지는 질문에 나만의 방식으로 답하기 위해서 얼마쯤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져야 한다. 그리고 불통과 단절의 시대에 더 깊은 소통과 공감, 연대를 위해서 오늘도 나는 책을 펼친다. 책 속에서 거닐다보면 내 유약한 사고에도 조금은 지혜와 사유의 덮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결국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우리를 '생각'의 광장으로 이끈다. 그의 생각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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