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택 "1분 1초가 급박했던 그때, 한마디로 전시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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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택 "1분 1초가 급박했던 그때, 한마디로 전시상황"

2주간 코호트 조치, 24시간 환자 보살피느라 탈진한 의료진 안타까워 환자 발길 끊겨, 추가감염 막는 게 최우선… 손해 걱정할 겨를 없었죠

  • 승인 2015-07-13 14:10
  • 신문게재 2015-07-14 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메르스 최전선 용사들을 만나다] <2>황인택 을지대병원장

▲ 황인택 을지대병원장
▲ 황인택 을지대병원장

지난달 8일 조용했던 을지대병원이 전쟁터로 변했다. 지난달 6일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90번 환자(62·사망)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진원지였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와 함께 있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감염을 막기 위해 다른 병원보다 빨리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고, 대비 태세를 갖췄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환자와 가족들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체류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90번 환자는 응급실에서 환자와 의료진 등 62명과 1차로 접촉했다. 중환자실에선 50명의 환자들이 무방비로 노출됐다. 중환자실 환자들은 면역력이 낮고, 중증을 앓고 있어 추가 감염 우려가 컸다.

당장 90번 환자를 음압병실로 옮겼고, 접촉자를 찾기 위한 자체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동경로에 맞춰 치열한 방역작전이 전개됐다. 보건당국은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중환자실을 '코호트(이동제한)' 조치했다. 매일 전 병동을 소독했고, 환자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열을 측정했다. 피로가 누적돼 탈진하는 간호사들도 나타났다.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다행히 코호트 조치가 끝나는 23일 0시 추가 감염자는 0명이었다. 황인택 을지대병원 원장은 “하늘이 도와 추가 감염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도 “메르스를 막아내겠다는 목표로, 전 직원이 하나가 돼 움직인 결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 원장과의 일문일답.

-처음 메르스 확진자가 삼성서울병원을 경유한 사실을 알렸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

▲가슴이 철렁했다. “이거 정말 큰일이구나” 했다. 메르스 전파를 막기 위해 병원 자체적으로 선별진료소도 운영하고, 철저히 열 측정도 하고 있었지만, 이 환자는 모두 통과해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입원했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입원 사실을 숨겼기에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환자가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지만, 입원 후 상태가 점점 안좋아졌다.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자 가족 중 한명이 “메르스가 아니냐”고 물어왔다. 알고 봤더니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와 같은 기간 머물렀던 것이다. 옥천군보건소, 질병관리본부에 부랴부랴 전화해 알아보니 관리대상자였다. 완전 무방비상태였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환자 보호자로부터 삼성서울병원 입원 사실을 알게 된 후 검체를 추출해 바로 질병관리본부로 보냈다. 확진 판정이 나오지 않았지만, 환자를 바로 음압병실로 이송했다. 소독과 자체 역학조사도 함께 진행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이었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행히 추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전시상황이었다. 대단했다.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고, 검사 결과가 통지될 때마다 모두 가슴을 졸였다. 보건당국이 제시한 지침보다 더 넓은 방역망을 쳤다. 환자가 슈퍼전파자가 아니었던 점이 많이 영향을 준 것 같다. 감염력이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침보단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가 심했다. 만약 기침이 심했다면 추가로 환자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우리 병원뿐만 아니라 대전지역 전체가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음압병실로 격리한 후 철저한 방역조치가 효과를 본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루 2번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열 측정을 실시했고, 코호트 조치 중인 환자들은 이틀에 한 번씩 검사를 진행했다. 코호트 조치 중반쯤 회의에서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가 직원들로부터 호되게 혼났다.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는 경고였다. 이 정도로 병원 전체가 매달려 메르스와 싸웠다. 운도 좋았지만, 병원의 빠른 대처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대전시민들이 우리 병원에 갖고 있는 인식도 이번 기회에 많이 변했다고 들었다. 더욱 열심히 하겠다.

-2주간의 중환자실 코호트 조치 기간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저보다 입원환자들,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이 가장 힘들었다. 돌아보면 딸 같은 어린 간호사들이 정말 큰일을 해줬다. 잘해줬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크다. 파트장도 제 역할을 했고, 고생이 많았다. 간호사들을 옆에서 다독거리면서 2주간 함께 끌고 갔다.

매일 가진 못했지만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중환자실에 몇 번 들렸었다. 방호복을 입고 가보니 중환자실 당직실에 간호사 몇 명이 주사를 맞고 누워있었다. 중환자실인 만큼 24시간 환자들을 돌보느라 지쳐 탈진한 것이다. 또 방호복을 입고 있어, 이들이 느끼는 피로는 2배였을테다. 자신들도 사람인지라 감염에 대한 공포도 커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했을 것이다.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응원밖에 없었다. 돈 몇 푼으로 위로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격리가 해제된 후 중환자실에 근무했던 의료진에게 재단차원에서 1억원의 위로금과 표창장을 전달했다. 2주라는 긴 시간을 참아준 환자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솔직히 병원 손해가 걱정됐을 것 같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메르스가 대전에 상륙한 5월 말부터 환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추가 환자가 발생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발길이 줄었다. 90번 환자가 확진된 후 중환자실이 코호트되며 환자가 뚝 끊겼다. 경영적인 부분에서 물론 걱정됐지만, 그것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아니 그런 걱정을 할 겨를도 없었다. 당장 추가 감염을 막는 게 중요했다. 병원은 물론 밖으로, 메르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회복세를 보이곤 있지만 완전 정상화까진 갈 길이 멀다. 건양대병원이 피해가 가장 심했다고 들었다. 다음에 우리 병원인데, 외래 환자는 이번주 들어 증가세로 올라섰다. 평소 환자의 80%까지 회복됐다. 하지만 병실과 수술은 60% 수준이라 아직 부족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정상화될거라 생각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정부의 초동대처 미흡도 문제지만, 환자들의 시민의식 부재도 이유로 꼽히는데.

▲그렇다. 환자 개인적인 입장에선 기저질환도 있고, 메르스로 시끄러운 병원에 들렀다는 사실을 방문 병원에 알릴 경우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와 불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다. 보건당국의 초동대처가 미흡하기도 했지만, 감염자들이 병원을 옮겨 다니며 메르스 발생·경유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을 숨겼기에 사태가 더욱 커졌다. 대전만 해도 그렇지 않느냐. 내원 당시 이 사실을 바로 알렸다면 초기에 격리돼 집중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추가 감염도 적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감염병 예방을 위해 행정적인 절차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의식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이번에도 2주간의 코호트 조치와 자가 격리 기간을 고맙게도 잘 참아준 격리 대상자와 의료진들이 많다. 앞으로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보단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마음을 갖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자리 잡길 바란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한국의 병문안 문화를 지적한 바 있다. 병문안 문화의 개선이 필요한다고 보는가.

▲필요하다고 본다. 병실과 응급실 과포화 현상은 이곳에 환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 한 명당 대부분 보호자들이 같이 상주하고 있다. 면회객도 많다. 감염병이 돌게 되면 환자는 물론 보호자, 면회객도 감염돼 확산이 급속도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도 보호자와 간병인 등이 감염된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조건 통제하기보다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로 면회시간을 정해 방문객을 통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메르스 사태로 보건소의 역할 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의사협회에서 보건소는 공중보건을 목적으로 예방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의한다. 공공의료를 수행할 병원이 보건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상황에서 보건소가 굳이 치료 역할에 치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예방접종 부분은 보건소가 역할을 계속 해줘야겠지만, 앞으론 치료적인 부분보단 예방적인 역할을 중점으로 수행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립의료원 설립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전시에서 메르스 등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립의료원 건립계획을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예산도 문제고, 부지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특히 무엇보다 대전의 병상 과밀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병원을 짓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우리 병원은 물론 건양대병원과 대청병원도 집중관리병원에서 해제돼 국민안심병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대전 내 메르스 환자의 최대 잠복기도 모두 지난 만큼, 이젠 막연히 두려움을 갖기보단 정상적으로 활동을 해도 괜찮다. 한창 메르스 공포가 기세를 떨칠 땐 병원에 택시도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도 병원이지만 지역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 메르스를 잊고, 지역 병원은 물론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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