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힘들지만 우리가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죠.”
중동에서 넘어온 낯선 전염병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과의 사투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최전선에 나가있는 병원과 의료진들의 사기는 꺾이고, 피로는 누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막아야만 한다”는 각오로, 메르스에 맞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메르스 전쟁 발발일은 지난달 31일.
대전 첫 메르스 감염자인 16번 환자(40)가 확진되면서부터다. 그는 지난달 15~17일 평택성모병원 입원 중 1번 환자(68)로부터 감염됐다.
이후 발열과 설사 등의 증상으로 지난달 22일 대청병원을 찾았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지난달 28일 건양대병원으로 옮겼다.
건양대병원은 지난달 30일 질병관리본부로부터 16번 환자가 관리 대상자임을 통보받았다.
즉시 16번 환자를 격리시킨 뒤 진단 검사를 의뢰했다. 병실 입원환자들도 1인실로 옮겼다.
다음날 16번 환자는 확진 판정을 받았다.
메르스는 완벽한 침투를 위해 16번 환자를 매수했다. 문진에서 '평택성모병원 입원 사실'을 숨기라고 한 것.
병원들은 보건당국의 '비공개 원칙'으로, 16번 환자의 경로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메르스와의 정보전에서 완패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전방 사령부' 2곳이 손쉽게 뚫려버렸다. 16번 환자를 통해 본진 깊숙이 침투한 메르스는 공격을 개시했다.
지난 1일부터 매일 1~2명씩 감염자를 만들어냈다. 지난 7일에는 확진자를 6명까지 만들며 지역을 메르스 공포로 몰아넣었다.
병원과 의료진은 반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보건당국의 예측은 빗나갔고, 정보는 여전히 막혀있었다.
서둘러 환자가 입원했던 병동을 '코호트(이동제한)격리' 했다. 환자 경로에 맞춰 긴급 방역에 나섰지만, 메르스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방호복과 마스크, 고글 등 보호 장비가 일회용인 만큼 각 병원의 감염 관리 물품이 동나기 시작했다. 전국의 방역업체와 소독 제품 제조업체를 수소문했지만 “우리도 없어서 못판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정부로부터 보급이 이뤄졌지만 물량이 부족해 보호 장비를 세트가 아닌 각개로 받아야 했다.
의료진은 이중 장갑을 꼈다. 현재 보호 장구 착용기준은 레벨D로, 이중 장갑은 착용은 레벨C 단계에서 이뤄진다. 의료진이 감염을 막기 위해 알아서 이중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셈이다.
환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음압병실'도 부족해졌다.
메르스 전담 치료병원인 충남대병원은 다른 병동에 있는 음압시설을 격리병동으로 옮겼다. 다른 병원의 음압시설을 빌리기까지 했다.
자가 격리된 의료진들의 자리를 남은 사람들이 채우면서 피로도는 극심해졌다. 간호사들의 3교대 근무는 주야간 2교대 근무로 변경됐고, 의사와 직원들도 당직을 서며 24시간 비상 대기했다.
책임감으로 버티던 이들을 쓰러지게 만든 것은 메르스가 아니었다. 바로 시민들의 특정병원과 의료인, 그 가족들을 향한 낙인찍기였다.
시민들의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공포가 의료진에게 향한 것이다. 이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병원과 의료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주길 원하는 것이 아닌 만큼 꿋꿋이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과 헌신을 다했다.
한 간호사는 메르스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다 감염되기까지 했다. 방호복을 착용했지만 격렬한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다.
기승을 부리던 메르스가 지난 15일 이후 주춤하기 시작했다. 메르스 관련 병원·환자 정보가 유기적으로 공유되고, 보급이 제때 이뤄진 덕분이다.
16번 환자로부터 발생한 3차 감염이 병원 측의 방역과 빠른 진단 등으로 잡혀갔다.
의료인의 피로누적을 덜기 위해 군 의료진도 투입됐다. 지난 20일에는 메르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첫 완치자가 지역에서 나왔다.
또 시민들의 응원메시지와 격려 캠페인이 이어지면서 메르스에 대한 역습이 이뤄지고 있다.
박창일 건양대병원 의료원장은 “메르스와의 전쟁 초기는 물론 지금도 지역 병원 전 직원과 의료진이 '메르스 확산을 막겠다'는 목표로 똘똘 뭉쳐 맞서고 있다”며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이 큰 도움과 용기가 됐고, 메르스가 종식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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