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사진은 대전의 갑천-월평공원에서 발견된 아물쇠딱따구리가 먹이를 나르고 있는 모습. 오른쪽은 갑천과 월평공원의 모습.
사진=대전환경운동연합 제공 |
해발 185m 키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뻗어 대전 중서부에 위치한 저는 '갑천-월평공원' 입니다.
능선을 척추 삼아 왼쪽에는 갑천이 흐르고 오른쪽에는 도마동과 도시숲이 있으며, 풍화침식에 강한 석영반암으로 이뤄져 주변보다 높은 산지지형으로 남아있게 됐지요.
누군가는 저를 대전의 공기를 정화해주는 허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저는 야생동식물들의 좋은 보금자리로 기억되고 싶어요. 비록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숲과 늪, 하천이 있어 많은 야생동식물이 기대어 지내고 있거든요.
대전을 지나는 하천 중에 한국 고유종인 미호종개와 들미자, 눈동자개가 사는 곳이 갑천 중에서도 월평공원 구간이고 희귀식물인 낙지다리,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있었던 유일한 곳이거든요.
하천 바닥이 모래이고 유속이 빠르지 않으면서 갈대·갯버들·환삼덩굴처럼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뤄 많은 물고기를 먹여주고 재워줘서 그런가봐요.
땅으로 올라오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인 수달과 2급인 삵도 수풀과 갑천을 오가며 지내고 있어요.
고라니가 폴짝 뛰어다니고 흙을 헤집는 두더지, 나뭇가지를 간지르는 청설모와 다람쥐도 저와 함께 지내는 친구들이랍니다. 겨울에 찾아오는 흰빰검둥오리와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말똥가리, 황조롱이도 갑천-월평공원에서는 볼 수 있죠.
그래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의뢰해 2011년 2년간 진행한 '월평공원·갑천지역 상태경관·습지 타당성 검토연구'보고서에서 저는 “식생이 풍부하고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덕분인지 이달에는 전에 목격되지 않았던 아물쇠딱따구리 한 쌍이 제 품에 찾아와 알을 낳고, 쉴 새 없이 갑천을 오가더니 솜털뭉치 같은 새끼가 나왔죠.
그런데 저는 도솔터널 개통 때 입은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요. 금정골이라는 계곡부에 구멍이 만들어졌는데 마침 그곳에만 식생하던 보호종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사라졌거든요.
당시 전문가라는 분들이 이삭귀개와 땅귀개를 보존하려 기존 서식처와 유사한 입지를 찾아 생육기반인 토양층까지 떠서 옮기는 복사이식을 했는데, 지금은 옮긴 서식처마저 파괴됐답니다.
그래서 갑천 옆에 호수공원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저는 앞으로 여러 친구와 계속 함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삭귀개와 땅귀개 친구들도 더 좋은 보금자리로 옮겨서 잘 살게 해준다고 했다가 결국 모두 잃은 아픈 경험이 있거든요. 농경지가 인공호수로 바뀌어도 저는 괜찮을까요?
임병안 기자 victorylba@
※ 이 기사는 '갑천-월평공원'을 1인칭으로 해서 '월평공원·갑천지역 상태경관·습지보호구역 지정 타당성 검토연구 최종보고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러티브형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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