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행사·축제서 '종횡무진'
4년째 대전시티즌 아나운서
IMF 외환위기는 가혹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중2 소년은 가족들과 함께 야반도주하다시피 고향을 떠나야했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돌봐야했던 시기. 고교생이 된 소년은 어버이날 꽃을 선물하기 위해 어머니 몰래 식당을 찾았다가 음식을 나르느라 분주한 어머니의 발이 새까맣게 변한 것을 보고 말았다. 끝내 꽃을 드리지 못하고 돌아온 소년은 지금도 그 때 일을 잊지 못한다.
“그 때 어머니의 발을 보고 정신을 차렸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꿈꾸는 사회자' MC 임용무(31·사진)씨는 1984년생, 이른바 'IMF세대'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중학 시절에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그로 인해 온가족이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는'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다.
너무도 힘들었던 시절, “그때의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임 씨는 이야기한다. “고3 때 대학에 수시합격은 했는데 등록금조차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3살 위 누나는 동생인 저를 대학에 보낸다고 대학진학도 포기했을 정도였죠. 그래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행사장에 나가게 됐고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고3 때 친구들은 수능 공부할 시간에 저는 행사장에서 있었던거죠.”
그렇게 행사장에 첫발을 들인 뒤 이제는 전문MC로서 확고한 자리도 잡았다. 각종 행사와 축제의 단골 진행자로 인기를 모으고 있고 방송 리포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2012년부터 4년째 대전시티즌의 장내 아나운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티즌 선수들을 보면 너무 좋다”는 임 씨는 시티즌의 성적이 저조해서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선수들을 보면 현재의 위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우리 선수들은 끝나고 나면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선수들도 아직은 부족하지만 메이저가 되기 위해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나름 자리를 잡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는 임씨는 “조울증도 걸렸었고, 행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우느라 고생도 많았다. 라면 사먹을 돈이 없어서 소면을 사다놓고 끓여먹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음향기기 나르는 것부터 시작했기에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에게 '5포세대'로 불리는 84년생, 또래의 아픈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내 인생의 청춘이 삶의 마지막이었다면 지금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하루 하루를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은 뭐든 열심히 하면서,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통해 행복한 꿈을 이야기하는 '꿈꾸는 사회자'가 되고 싶다는 임 씨. “지금도 식당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집을 짓고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임 씨의 꿈을 응원해본다.
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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