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도 동백나무숲에 동백꽃이 지천으로 떨어져 봄이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오른쪽 사진) |
밤기차서 내리면 새벽 4시,
동백꽃이 톡톡 떨어진 오동도엔
싱그러운 웃음꽃이 만발한다
남도의 여유에 안도감이 들었다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먼 불빛들 뒤로하고 밤기차는 쉬지 않고 달려갔다. 여수, 이 기차의 종착역. 동이 트기에는 이른 새벽 4시,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부시시한 얼굴로 대합실로 들어선다. 그래봐야 예닐곱명. 다행히 '맞이방'이라고 해서 대합실 한쪽을 바람막이 유리문을 설치하고 난방을 해서 그런지 따뜻했다. “애고, 자식들 땜에 속이 상해서 그냥 쓰레빠 신은 채로 여기까지 와버렸어. 올케가 여시동 사는데 한번 가 보려구. 동생들은 다 죽고 자식들은 돈만 달라고 하구. 그래도 자식이 돈 달라고 하면 안 줄수가 없어. 자식이니까.” 서울에서 왔다는, 여든네살인데도 정정한 할머니는 연신 얘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할머니 얘기 들어주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깨보니 휑하니 아무도 없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수여행이 이번이 두 번째던가. 맛에 대한 기억은 참 강렬하다. 15년전 친구랑 초여름 이른 아침, 향일암에서 아침 바다를 보고 내려와 슈퍼에서 라면을 끓여달래서 먹는데 처음보는 김치가 나왔다. 알싸하면서 톡 쏘는 맛이 독특해 주인 아저씨한테 이게 뭐냐고 물었다. '갓김치'란다. 우리는 맛있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산적같이 생긴 주인남자는 말을 트게 되자 능글거리는 눈빛으로 시시껄렁한 말을 해댔다. '주둥아리를 확 쪼사불라.' 후다닥 먹고 나와버렸지만 그때 맛본 갓김치는 여수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다시 그 향일암으로 시내버스가 달려간다. 길을 따라 동백나무가 지천이다. 시골마을의 납작한 집들은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조그만 땅덩이 안에서도 어쩜 이리 지역마다 색깔이 다를까. 중국 대륙은 워낙 땅이 넓어 말이 안통할 정도라더니. 향일암에서 바라본 남해바다는 한없이 고요하고 잔잔했다. 거기다 안개까지 살짝 끼어 신비롭기까지 하다. 음력 초하룻날이라 대웅전 법당은 불공드리는 여인들로 가득했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까.
▲ 홍합을 보여주며 짓궂은 농담을 해 즐거움을 줬던 할머니. |
마른 홍합 한 봉지 사들고 이순신광장 식당 골목에서 게장백반 배불리 먹고나니 걷고 싶어졌다. 오동도까진 멀지 않은 거리다. 날도 따뜻하고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햇살을 맘껏 쬐고 싶었다. 여수의 상징 돌산대교 앞 포구를 지나는데 기름냄새가 코를 찌른다. 허공엔 케이블카가 열기구처럼 두둥실 떠다니고 고깃배가 정박해 있어 한껏 낭만적인 분위기인데 웬 기름냄샌가 싶었다. “여수엑스포 시설 설치하느라 전에 있던 항구가 없어졌당께. 그랴서 임시로 여그로 다 고깃배고 기름배고 합쳐부러서 복잡혀.”, “항구를 제대로 끼고 있어서 바다사업이 잘되야 경기가 풀리는디. 그 많은 엑스포시설 지금은 텅텅 비었어. 대기업도 손을 안댄당께.” 기름배 기관사로 일한다는 아저씨가 열변을 토했다.
▲ 돌산대교와 해양케이블카가 어우러져 장관이다 |
글·사진=우난순 기자 woo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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