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음악평론가 |
지난 8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있었던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 연주는 베를린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악장과 전·현직 수석으로 이루어진 현악사중주 공연이었다.
수십 년을 교향악단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한 마음으로 갈고 닦은 대표주자들은 현악사중주를 통해 어떻게 음악을 표현할까. 이들은 무대에 등장해서 인사할 때부터 자연스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경직되지 않고 관객의 박수에 편안하게 응대하는 모습에서부터 음악이 지닌 아름다움을 결코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미적 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태도가 완연히 느껴졌다.
첫 곡인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곡 12번(Op.127)은 형식은 고전적이지만 베토벤이 청각을 잃은 뒤 작곡된 작품이기에 그 내용에는 깊은 고뇌와 낭만적 흐름이 가득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사색적이고 중후한 화성진행과 서정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의 선율을 주고받으며 한 호흡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현악사중주를 연주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악기들 간의 기량이 한쪽으로 치우쳐 음악적 균형을 맞추지 못할 때 발생한다. 각자의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은 섬세하고 정밀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런 베토벤 현악사중주곡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단지 베토벤 음악이 지닌 심오한 개성을 때로는 일필휘지의 강렬한 느낌으로 듣고 싶은 순간이 존재했다. 이따금 굽이굽이 돌아 폭포로 쏟아져 내리는 물의 흐름을 보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바람은 후반부의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곡에서 조재혁의 피아노와 함께 하면서 일시에 해소됐다. 브람스 피아노오중주곡(Op.34)은 베를린 필하모닉 콰르텟의 능숙한 기술과 조재혁의 발랄하면서도 당당한 피아노 반주로 베토벤과는 사뭇 다른 효과를 보여주었다. 이들이 연주하는 브람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음악이 과잉으로 흐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처럼 풍부한 음향을 생동감있게 그리면서 엄격하면서도 화려한 브람스 피아노오중주곡을 환상적으로 펼쳐보였다.
아울러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과 아리랑 변주곡은 관객들의 한국적 감성을 촉촉이 적셨다. 마지막 앙코르 곡으로 조재혁이 피아노로 연주한 경쾌한 슈만의 가곡 헌정은 바로 관객에게 바치는 헌정이자 함께 해 준 감사의 표현이었다. 그날 관객들은 베를린 필하모닉 스트링 콰르텟을 통해 현악사중주의 진수를 맛봄과 동시에 음악이 지닌 참된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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