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충남 할머니들의 힘겨운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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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충남 할머니들의 힘겨운 생활상

“버스비 아까워 시장까지 걸어도… 하루종일 앉아 벌이 1600원 뿐” 굴 양동이에 바지젖기 '일쑤'… 노령연금, 한달 약값도 안돼

  • 승인 2015-03-10 18:11
  • 신문게재 2015-03-11 6면
  • 유희성기자유희성기자
보령이 고향인 첫 번째 할머니는 젊었을 때 홍성으로 시집와 지금껏 살고 있다. 할머니는 수십년 전부터 홍성과 예산, 광천 5일장 등을 다니며 직접 기른 나물 같은 걸 팔았다.

1일과 6일에는 홍성 장, 3일과 8일에는 예산 역전 장, 5일과 10일에는 예산 읍내 장. 이런 식으로 주변 지역 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다니는 장이 줄고 거의 홍성 장만 다닌다.

예산이나 광천 장을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 버스비도 안 나온다.

기자를 만난 날 할머니는 “하루 종일 시장 길가에 앉아서 1600원 벌었다”고 말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요즘은 걸어서 시장에 나가는데, 언덕이 나오면 너무 힘들어 몇 번을 앉았다가 다시 출발한다.

할머니는 묻지 않았는데도 “아들이 용돈도 많이 주고 맨날 같이 살자고 하는데, 나는 혼자 시장 나가면서 사는게 좋다”고 수차례 설명했다.

홍성 서부에 사는 두 번째 할머니는 하루 왕복 52㎞를 농어촌 버스에 의지해 홍성매일시장에 나와 직접 딴 굴을 판다. 집에서 시장까지 나오는데 만 2시간 반 정도걸린다.

버스에서 내린 할머니는 차가 빵빵대는 도로를 가로질러 시장으로 들어가는데 구부정한 키가 승용차보다도 작아 심지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굴 양동이에서는 물이 넘칠 때도 있어 바지가 젖기 일쑤다.

이 할머니는 분명 손녀가 입던 것으로 보이는 유행이 한참 지난 잠바로 하루를 버틴다.

바닷물을 담은 양동이에 있는 굴을 팔다보면 손이 다 젖는데, 수건 같은 건 없고 아까 젖었던 바지에 슥 문지르면 된다.

젖은 손으로 기자의 손을 자꾸만 쓰다듬던 할머니는 “참 곱다”고 연신 말했다. 한파와 바닷물 탓에 아주 빨간 할머니의 손과 손가락은 놀라울 정도로 두텁고 거칠었다.

그런데 세 번째 할머니는 시장에 다니는 이런 동년배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 할머니는 양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져 잘 걷지도, 서지도 못한다. 60여년을 논에서 밭에서, 부엌에서 고생한 탓이다.

몇 년째 이동할 수 없다보니 요즘엔 눈 뜨고 나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머리에서 귀뚜라미 우는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서 고역이다.

가끔은 아기가 부르는 소리도 들리는데, 남들은 자꾸 안 들린다고 해서 답답하다.

그리고 요즘은 특히 속상한 것이 있다. 나라에서 노령연금이라고 돈이 조금 나오는데 한 달 약값도 채 되지 않아 자식들 돈을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식들도 먹고 살기 힘든데 늙은이 약 사다 준다고 돈 쓰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충남의 할머니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내포=유희성 기자 jd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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