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허가받은 엽총으로 가족 등 가까운 지인을 겨냥한 범죄가 지역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잇달아 발생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돈과 애정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분노가 폭력적 수단으로 폭발해 희생이 컸다는 점에서 분노범죄로 해석되고 있다. 이미 지역에서 발생하는 방화와 칼부림 등의 사건 상당수가 홧김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어지고 있어 분노범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지난 달 말 세종시와 경기도 화성에서 잇달아 발생한 엽총 총격사건은 분노의 극단적 표출과 맥을 함께 한다.
돈과 치정에 눈먼 50대 남성이 세종에서 옛 연인의 아버지(74)와 오빠(50) 등 3명을 총격, 살해하고 불까지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틀 후 경기도 화성에서는 70대 남성이 재산문제로 얽힌 형(86)과 형수(84), 그리고 출동한 경찰까지 해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 세상을 경악케 했다.
이는 좌절감에 휩싸인 피의자가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저지른 분노형 범죄의 전형적인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범행도구인 엽총을 사건장소 인근에 미리 옮겨놓고, 출고한 지 수 시간만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치밀한 계획까지 있었던 것으로 여겨져 충격은 더욱 크다.
충남대 심리학과 전우영 교수는 “사랑이나 어떤 목표에 쟁취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된 경우 그것이 좌절됐을 때 좌절시킨 대상에 공격성을 드러내게 된다”며 “화가 나도 합리적 방법을 찾는 일반적 방법과 달리 좌절에 따른 공격성은 소통의 기술이나 방법보다 폭력이라는 원초적 수단이 동원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극단적 수단으로 감정을 표출해 발생하는 범죄는 이미 강력사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7일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서 60대 남성이 말다툼 끝에 지난 2년간 교제한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사건도 순간 치솟은 분노가 원인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지난 해 전국에서 검거된 폭력범 36만 6000여명 중 15만 2000여명이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분노범죄였다.
소방통계에서 2009년 이후 5년간 대전·충남에서 발생한 방화 766건 중 '우발적'과 '현실불만'이 이유인 방화가 291건이었다.
이밖에 분노 조절 어려움에 따른 범죄는 차량돌진, 칼부림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분노범죄가 총기라는 살상무기를 사용해 가족과 연인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을 겨냥해 모방하듯 연이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단면이라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만성 분노형 범죄자들에 대한 형사적 관리체계를 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정숙 연구팀은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에서 “만성 분노형 범죄는 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의도를 잘못 해석하거나 분풀이로 발생한다”며 “사회적 병리와 형사 및 사회복지 정책과 관련 있음을 사회구성원이 인식하고 분노형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체계를 재정비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