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대전 산내 골령골의 민간인 희생매장지에서 유골이 발견돼 발굴단원이 수습작업을 벌이고 있다. |
대전 산내 민간인 학살사건은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을 결정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당시 대전형무소에는 재소자 4000명이 있었고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거치며 재소자는 크게 늘었다.
6월 25일부터 30일 사이 치안국에서 무선전문으로 보도연맹원들을 전부 검거해 처단하라는 지시가 충남경찰국에 하달됐고, 7월 1일 대전형무소에도 대전검찰청의 같은 내용의 전문이 접수됐다.
대전에 치안을 수습하라는 지시를 받고 헌병대가 대전형무소 재소자 인도 요구를 하면서 민간인 희생이 시작됐다.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은 형무관들에게 묶여 헌병들이 징발한 트럭에 실렸다.
이들은 대전형무소에서 희생장소인 산내 골령골까지 대전형무소 특별경비대 등에 의해 이동됐다.
당시 대전형무소 한 경비대원은 “한 사람 왼손하고 옆 사람 오른손 하고 어긋매기로 묶었어요. 헌병이 징발한 트럭에 꽉꽉 채워 재소자들은 아주 납작해져요”라고 증언한 게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기록됐다.
산내 골령골에는 경찰이 사전에 주민들과 청년방위대를 동원해 파놓은 구덩이들이 준비돼 있었다.
한 주민은 “이틀간 구덩이 팠는데 사람을 죽인다는 소문을 듣고 더는 안갔다”고 진실화해위에 증언했다.
재소자들은 골령골에서 눈을 가리고 뒤에서 나무기둥에 손이 묶였다.
헌병 지휘자의 구령에 따라 헌병대가 총살을 하고 헌병 지휘자가 확인사살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생존한 대전형무소 형무관과 충남경찰국과 대전경찰서 소속 경찰 등의 진술조서를 바탕으로 2010년 이같은 사실규명결정을 내렸다.
이를 통해 진실화해위원회는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희생사건을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살해당한 사건”으로 규정됐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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