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500통 배달 자긍심
쪽방 노인에 말벗이자 친구
주민들과 희노애락 함께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우리는 손글씨를 잃어버렸다.
모바일 메신저는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로 생활을 뒤바꿔놓았고 타이핑을 통해 생성된 디지털 글자는 이메일을 매개수단으로, 편지라는 추억의 산물을 잊게 만들었다.
직접 쓴 글자 하나하나엔 글쓴이의 감정이 한올 한올 엮겨있지만 이젠 글쓴이의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대체돼버렸다.
그나마 거리 한 모퉁이에서 스치듯 찾아볼 수 있는 빨간 우체통이 옛 추억을 다시 일깨워주곤 한다.
화석처럼 변해버린 편지지만 아직은 우체통을 거친 정겨운 손편지가 아날로그 시대의 끊질긴 생명력을 대변한다.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편지를 직접 전달해주는 집배원 정숙희(55·사진)씨는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추억의 역사를 나르는 전령사의 임무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여성 집배원 1호'로 잘 알려진 '베테랑 우편배달 아줌마'다.
정 집배원은 1992년 대통령선거로 우편물이 쏟아질 당시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지난 1993년 7월 집배원 모집공고를 통해 지역 첫 여성 집배원이라는 명찰을 달았다.
그는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집배원 특채를 뽑는다며 우체국 직원의 추천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소식을 들었다”며 “어리둥절한 마음을 안고 우체국에 처음 출근했다가 사랑의 메신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집배원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던 순간을 떠올렸다.
오전 7시에 출근해 하루 종일 움직이다 오후 8시쯤 퇴근하는 고된 업무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만족감이 대단하다.
정 집배원이 가가호호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은 대략 2500여 통. 거기에 선물 소포 150여 개도 더해진다.
20여 년 넘게 일한 탓에 지금은 그녀를 알아보는 주민들도 많이 생겨났다.
대전 서구 둔산동 보라아파트 단지 일대를 돌면서 하루 동안 찾을 보람과 기쁨을 그는 먼저 느낀다.
정 집배원은 “그저 우편물만 나누는 게 아니라 정을 나누고, 세상을 알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아직도 햇볕조차 들지 않는 쪽방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겐 우리가 유일한 말벗이고 친구가 되죠”라고 말했다.
그는 때론 선물 소포를 받아들 주민의 표정을 떠올리기도 하며 멀리 사는 가족의 비보를 듣게 될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수십 통의 편지를 담은 가방이 무거워 어깨가 결리기도 하고 무거운 짐을 배달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집집마다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즐겁다는 정 집배원의 얼굴 역시 밝기만 하다.
고된 업무에도 정 집배원은 휴일에는 체력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파서 결근하게 되며 자신의 일이 고스란히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은 다음날 나와서 처리하거나 집에서 해도 되지만 반드시 그날그날 처리해 나눠줘야 하는 우편물을 다른 동료들에게 떠맡기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두 아이를 둔 정 집배원은 이렇듯 특별하지 않은 소박함과 일상에서의 만족에서 행복을 찾는다.
20여년을 함께 지켜본 주민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정 집배원은 오늘의 살아가는 이유를 함께 찾아본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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