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책도 무용지물, 얼어붙은 소비심리 요지부동, 디스플레이션 우려도
빚 내서 먹고사는 서민들, 커지는 규모보다 질이 더 문제
소득 하위20% 4년새 60%↑, 가구 72%“생계 부담 느낀다”
서민들은 힘들어진 살림살이에 지갑을 닫아버렸다.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자 경제 회복 속도도 더뎌졌다. 이에 서민들의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올해 국내 경제 상황이 저성장과 저물가로 인한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적절한 정책대응 마련이 필요하다.
▲갈수록 닫히는 지갑=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 '긴급처방'에도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소비심리는 세월호 사고 직후 수준보다 더 나빠졌다.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가 발표한 '대전ㆍ충남지역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중 소비자심리지수는 102로 전월(103)보다 1포인트 하락했다. 기준금리인하 등 정부의 경제 부양책 영향으로 지난해 9월 105로 정점을 찍은 후 3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세월호 사고 직후인 지난해 5월(102)과 동일한 수치다.
전국적으로도 소비자심리지수는 102로 세월호 참사 여파로 심리가 위축된 지난해 5월(105)보다도 낮다. 2013년 9월(102) 이후 1년3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두 차례에 걸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가 여러 차례 내놓은 부동산 대책도 내수시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인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2.6%를 기록했는데,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저치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의 하락은 실제 물가상승률을 낮출 수 있어 디플레이션의 전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소비심리 위축의 주요 요인으로는 대외경기 여건 악화와 내수 부진을 꼽았다. 여기에 그동안 한국 경제를 떠받친 수출 전망이 어두워진 점도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의 지난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8%에서 3.5%로 낮아지면서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늦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일본의 엔저와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유럽의 경기 불황 등 대외 여건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인구 고령화와 가계 빚 증가, 소득 정체 등이 가계의 소비를 옥죄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8월ㆍ10월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와 지난해 8월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LTVㆍDTI 규제 완화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가계부채는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에 따르면 2014년 10월말 기준 대전ㆍ세종ㆍ충남 지역의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48조7188억원으로 한 달 사이 7747억원이 급증했다. 전국적으로도 10월 말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730조6000만원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상승폭은 7조8000억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0월 이래 최대 규모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대출 규모가 8.1%(54조5000억원) 늘었다.
가계부채가 증가하면서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늘어나는 양도 문제지만 가계부채 질이 더 큰 문제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가계금융ㆍ복지 조사'에 따르면 가난할수록 빚이 더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소득이 가장 낮은 최하위 20%의 금융부채는 지난해 868만원으로 2010년(543만원)보다 60% 가까이 늘었다. 반면 소득이 높은 상위 20%의 빚은 2010년 7141만원에서 지난해 9312만원으로 30% 증가했다. 빚이 생계에 부담이 된다고 느끼는 가구는 2010년 71.8%에서 2012년(68.1%)에 잠시 줄었다가 지난해 71.8%로 다시 늘었다.
▲저물가 대책마련 시급=가계대출이 급증하자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이 늘어나면서 소비심리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 소득이 크게 늘지 않았는데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져 소비가 쪼그라든 탓이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가처분 소득에 대한 부채비율이 160%를 넘은 데다 주요국에 비해서도 높다.
한 금융 관계자는 “부채는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와 소득 증가를 함께 고려해 상환 능력을 높여 나가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금융 관계자는 “대출이 늘어도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게 문제”라며 “재정ㆍ통화정책 외에 일자리와 가계의 소득 증대, 노후 보장 등 가계가 돈을 더 쓸 수 있는 구조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