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중앙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
대전 중앙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최순이(67·가명)할머니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30분째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다. 간혹 발걸음을 멈추고 채소 가격을 묻는 손님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갑을 열기보다는 잠깐잠깐 흥정만 하다 자리를 뜬다. 시장 한복판에서 과일 좌판을 벌인 지 30년째지만 “요즘처럼 안 팔리는 때는 처음”이란다.
“물어보면 뭐해. 이때쯤에는 찬거리 준비하는 주부들이나 손님들이 들이닥치는데, 지나가는 개미 하나 없어…. 작년엔 그래도 아등바등 살아보겠다고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돈만 계속 까먹고 있지뭐, 이 나이에 딴 거 할 수도 없고….”
이 시간에 바짝 벌어야 하루종일 추위에 벌벌 떨며 손님을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으련만 요즘은 한마디로 '손님이 뚝 끊겼다'.
최 할머니의 야채 과일 좌판은 시장 입구에 있어 입지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추위 탓인지 시장을 걸어서 둘러보는 손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는 썰렁하다. 간혹 승용차를 타고 온 손님들이 총총걸음으로 귤 한 상자 정도를 사가는 게 전부였다.
골목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 주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장신구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 주인, 신발가게 주인, 안경가게 주인, 속옷가게 주인 모두 호객행위를 할 사람조차 눈에 띄지 않자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모(43)씨는 “물어보면 뭐해. 사람은 많은 것 같아도 물건 사러 들어오는 손님은 통 없어. 요즘 장사 안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된 일이냐”면서 혀를 찼다. 한파로 과일도 얼고 거리도 얼고, 자신의 마음도 얼어붙었다는 한 상인의 푸념에서 깊은 시름이 전해졌다.
이처럼 '바닥경기'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재래시장에 국제통화기금(IMF)때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에 따른 가계소비 둔화로 재래시장의 주 고객층인 서민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장사가 좀 된다는 중앙시장이 이 정도이면 대전 일대의 나머지 재래시장 사정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일선 상인들의 한결같은 대답이다.
형편이 이러니 인근 식당도 매출이 크게 줄긴 마찬가지다. 장사가 신통찮아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 대신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상인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4시였지만 시장 중앙로에서 조금 벗어난 뒷길에서는 털장갑과 떡을 파는 아주머니 몇명이 모여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있었다. 시장 안쪽에 있는 대형 상가는 상황이 더 심각해 곳곳에 '임대문의'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장사가 안돼 임대료마저 내지 못하고 몇달 버티다 결국 자리를 내놓은 것. 시장에서 터를 잡은 상인들은 최근 모두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하루에 손님이 10명도 안되는 날도 많아 하루 밥값 벌기도 힘들다고 한다.
연말연시 특수 속에 추운 줄 모르고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하던 모습은 옛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물건 한 개라도 더 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숨겨진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경제 불황이 상인들의 풍성한 인심과 훈훈한 정까지 빼앗지는 못한 듯 했다. 인적이 뜸한 시장이지만 상인들은 어렵다는 이유로 쉴 수만은 없다며 더욱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물건을 정리하며 손님들을 기다렸다. '덤'으로 귤 두어 개를 얹어주고, 몇 백 원씩 값을 빼주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며 손님들은 그들의 친절함과 따뜻한 정에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구범림 대전상인연합회 회장은 “겨울에는 이불가게, 옷가게들이 그나마 매출이 낫지만 반대로 외식, 과일 야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매일 어렵다고만 하기보다는 2015년의 경제가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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