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늦가을, 가족들과 지나는 길에 잠깐 들렀던 성주사지는 내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이미지가 됐다. 절터의 규모로 보아 영화를 누렸음직한 사찰이 이젠 영락한 늙은 황진이의 헤진 속곳을 보는 듯한 폐허가 돼 민망함으로 다가왔다. 허허로운 벌판 같은 곳에 깨진 기왓조각하며 굴러다니는 돌덩이가 무엇이겠냐마는…. 세상살이에 진저리를 내던 차라 그것들을 쓰다듬으며 실타래처럼 꼬인 심사가 풀리는 듯한 위안을 받았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표지판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때 중창된 성주사는 불전이 50칸, 행랑이 800칸, 고사(庫舍)가 50칸이었다고 한다. 그 웅장하고 화려했던 모습은 어떻게 됐나. 금당 앞 돌계단을 오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불현듯 삶이 백일몽 같다고 느껴진다. 누군가는 사람살이가 그저 아름다워 보인다면 그것은 추잡한 허식이라고 했다.
추한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은 마땅히 추하다. 유하는 시 '오징어'에서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이라고 부르짖었다. 눈앞의 저 찬란한 빛이 죽음인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오징어처럼 나 또한 자신을 기만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삶의 한순간이 같을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권태롭다. 권태에 시달려 폐허를 헤매는 나에게 성주사지는 그저 정신적 양념에 불과할지 모른다.
고타마 싯타르타는 세상의 본질이란 본질 없음이라고 했다.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고 삼라만상은 유동한다. 긴 시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한 목숨의 일생도 우주의 시계로는 고작 한 순간이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사라져간 성주사의 역사를 더듬고, 홀로 이 폐허에 남겨진 나의 운명을 반추해 본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마모된 석탑들과 마주하면 옛 사람들의 옷자락이 환영처럼 스쳐간다. 역사의 흔적들은 이렇듯 거울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문득 성주사지를 앞뒤로 감싸고 있는 봉긋한 산들이 정겹다. 흔히 명산대찰에서 볼수 있는 아름드리 노송은 없지만 소박한 솔숲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따금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의 타박타박 발소리도 음악소리 같다. 절터 가운데에 자리잡은 5층석탑의 그림자가 길게 눕기 시작했다.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데 과연 하늘이 뿌얘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노곤한 몸이 풀리자 졸음이 밀려온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 아직 더러운 욕망이 들끓는 소란스런 도시를 버릴 준비가 안됐다. 삶은 바람의 생리를 닮았다. 그러니 삶이 어찌 여행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는 길=대천톨게이트에서 보령방면으로 나와 21번 국도를 이용해 서천으로 향하다 보령시청쪽으로 좌회전한다. 성주터널을 지나 성주삼거리에서 좌회전해 1㎞ 가면 왼쪽에 성주사지가 있다.
▲먹거리=바닷가를 끼고 있는 보령은 먹거리가 풍부하다. 한겨울의 별미는 굴과 간재미로 맛이 특별하다. 천북에 가면 굴구이, 굴회, 굴칼국수 등이 있다. 간재미는 오천항에 가면 맛볼수 있다.
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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