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조그마한 동네에서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안미자(58·사진)씨. “30년 전 농촌에서 살겠다고 하자 다들 걱정했지만 이제는 모두들 부러워합니다.”
안씨는 이곳 우명동에 터를 잡고 들어와 농사일부터 축산업까지 다양한 일을 해온 농촌 대표 주부다. 그는 얼마전부터 자신의 재능을 살려 조그만 떡 사업을 시작하며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안 씨의 농촌 생활은 30년 전 축산과를 나온 남편 남기정(61)씨를 따라나서며 시작됐다. “둘다 농촌 생활에 대한 동경이 컸어요. 알면 농촌 생활 시작 안했을 거예요. 처음에는 일이 서툴러 힘들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하면 괜찮겠지하며 생활한 것이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농촌 일은 남자, 여자 일이 따로 없다. 내가 시간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는 배려심이 필요한 일이죠.”
안 씨가 떡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3년 농업기술센터에서 맥잇기 사업을 통해 전통떡내림솜씨 전수자로 꼽히면서다.
그후 그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떡만들기 강의를 꾸준히 해오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떡사업을 시작했다. 얼마전에는 마을 기업으로 지원을 받았다.
“농촌에 들어와서 생활하다보니 나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요. 평소에 주변으로부터 요리 솜씨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는데 농업기술센터로 부터 요리교육을 해달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됐죠.”
안 씨는 2003년 전국떡만들기 경연대회에서 장려상과 특상을 받으며 솜씨를 인정받았다. 그는 시골집에서 떡을 만들어 택배로 배달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주변 농가 소득에도 도움을 주고 본인도 믿고 재료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떡은 그날 만들어서 그날 배달하는게 원칙이에요. 내 떡을 맛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찾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이제는 어엿한 사업이 됐죠.”
안 씨는 자식농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방송통신대학을 5년간 다니며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였다. 안 씨의 노력으로 첫째는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으며, 둘째는 안씨를 닮았는지 조리학과를 나와 춘천에서 식품가공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느날 모래로 아이들이 씨 뿌리는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죠. 내 행동을 보고 배우는구나 생각해 그날로 방송통신대를 들어가 학교를 다녔다. 농사는 잘못하면 1년이지만 자식농사는 잘못하면 후손까지 고생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현재 농가주부모임 대전지역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초대연합회장직을 수행했다가 지난 2011년 다시 회장직을 맡았다. “대전지역에 농촌인구가 많지 않아 회장도 하게 됐죠. 농협 주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요.”
안 씨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 주변 요양원에 계신분들에게 떡을 나눠드리고, 흑석리 무료급식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예전부터 고아원과 양로원을 함께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서 이루지 못했어요. 큰 금액이 아니어도 남을 돕는다는 거 자체가 행복이죠. 힘들다고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어요. 나중에 형편이 괜찮아지면 남을 후원하면서 살고 싶어요.”
힘든 농촌 생활을 이겨내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 가족을 돌보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안 씨의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이상문 기자 ubot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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