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리지 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의 안정용(왼쪽), 이석희 씨가 지난 1일 대전역 후문 주차장에서 고객이 맡긴 차를 세차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token77@ |
세상은 이들에게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삶을 쉬이 돌려주지 않았다.이들은 지적장애와 자폐증으로 한때 공장 등 번번이 직장을 전전하며 어려움을 겪어왔다. 구했다 하더라도 적응을 못 해 금방 나와야 했다.
그런 그들에게 차를 닦고 광을 내는 일은 돈벌이 이전에 세상으로 들어가는 희망 같은 것이다.
지난 1일 대전역 후문 주차장. 장갑을 끼고 장비를 챙긴 팀원들이 각자의 작업에 나섰다. 지적장애인 3명이 차량 한 대를 둘러싼 채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쓱쓱 싹싹 세차에 열심이었다. 한 명이 스팀으로 차체를 말끔히 닦아내는 동안 다른 한 명은 그 뒤를 쫓으며 물기를 제거한다. 또 다른 이는 바퀴 옆에 아예 쭈그리고 앉아 휠 및 바퀴를 닦고 있다.
부쩍 추워진 날씨 탓일까. 잠시 고개를 든 안정용 씨의 코끝에 콧물이 달려 있다. 그는 이제야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일을 가졌다고 한다.
안씨는 “냉면 공장에서 일을 할 때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세차를 통해 이 사회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동안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자립을 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기 힘으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팀의 둘째이자 만화가의 꿈을 가진 이석희 씨도 이 일에서만큼은 '프로'못지 않다. 처음 세차 일을 접했을 때는 낯가림이 심했지만, 점차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이 씨는 “머리 쓰는 게 아니라 육체만 힘이 들 뿐 세차를 한 뒤 고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며 “만화가가 꿈인 만큼 직접 번 돈으로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부푼 꿈을 드러냈다.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막내 안형준 씨도 세차를 하며 새로운 꿈을 이어나가고 있다. 공장에서 팔레트를 나르기를 비롯해 택배 등 다양한 일을 했지만 이 만큼 마음 편히 배려해 주는 곳은 없다고 한다. 이 일을 통해 새로운 꿈을 찾아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고 있을 정도다.
안형준씨는 “첫째는 힘들지 않고, 둘째는 배려해주고 공장에서 일했던 반년보다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다”며 “면허증을 따면 가장 하고 싶은 길거리 과일장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협동조합 직원들은 세차라는 직업 이 외에 '꿈'이라는 더 값진 선물을 받았다. 그들이 품은 소망과 다가올 미래상도 저마다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세차로 인연을 맺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금세 말끔해진 차를 보면서 이들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도 차 한 대를 닦은 만큼 내일은 더 밝아질 것이라는 믿음에 그들은 차를 닦는다.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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